입력 : 2012.01.14 03:04

6·25전쟁 개입 때도 바둑외교 과시, 불리한 상황에도 선제 공격 감행해 정치적 타협 시도

"지금 아시아에서 미·중 다시 격돌하면 1차 세계대전 직전 유럽 상황 될 수 있어"

중국 이야기

헨리 키신저 지음|권기대 옮김|민음사|686쪽|2만5000원

헨리 키신저(Kissinger·89)는 '중국 이야기(원제:On China)'에서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을 처음 만났던 순간을 이렇게 기록했다.

"…내가 좌중에서 유일하게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것을 지적하면서 마오쩌둥은 덧붙였다. '저 양반더러 오늘의 주(主) 연사가 되라고 하는 게 어떻겠소?' 마치 버릇인 양 마오쩌둥은 손님들 사이의 '갈등'을 유발하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

민음사 제공
키신저가 마오를 처음 만난 것은 1972년 2월 21일 베이징(北京)에 있는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의 집단 거주지 중난하이(中南海) 내부 마오의 개인서재 국향서옥(菊香書屋)에서였다. 키신저는 이보다 7개월 전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으로 파키스탄을 방문 중, 비밀리에 베이징으로 날아가 저우언라이(周恩來)와 만나 '미·중 화해'라는 역사적 사건을 빚어놓았다. 키신저는 저우언라이와의 마라톤회담을 통해 닉슨 대통령의 방중(訪中)을 성사시켰고, 닉슨―마오의 역사적 회담은 국향서옥에서 이뤄졌다.

키신저 설명에 따르면, 마오는 정상회담 자리에서도 중국 외교의 기본 전술인 이이제이(以夷制夷), 즉 오랑캐끼리의 갈등을 유발하기를 즐겼다. '유일한 박사'인 대통령의 안보보좌관 키신저가 회담장의 관심을 가로채면, 대통령인 닉슨이 즐거워하지 않을 것을 계산한 발언이었다.

그때부터 최근까지 '50차례 이상' 중국을 방문한 키신저는 외교에 관한 서양과 중국의 사고방식의 차이를 체스와 바둑의 게임 룰의 차이로 설명한다. 서양의 체스가 왕을 공격해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게임이라면, 중국 사람들이 '웨이치(圍棋·둘러싸기 게임)'라고 부르는 바둑은 차지하는 면적의 비교우위를 추구하는 게임이다. 체스와 바둑의 그런 기본적 차이점 때문에 체스는 서양 최고의 전략가 칼 폰 클라우제비츠(Klausewitz)에게 '힘의 중심(Center of Gravity)'이라는 개념과 '결정적인 공격목표(Decisive Point)'라는 개념을 가르쳐주었고, 바둑은 '전략적 포위'라는 개념을 가르쳐준다는 것이 키신저의 설명이다. 체스는 정면충돌을 통해 적의 말을 제거해야 하고, 바둑은 판의 비어 있는 곳을 향해 움직여 상대방의 전략적 잠재력, 다시 말해 '세(勢)'를 서서히 줄여가는 게임이라는 해석이다.

마오쩌둥(왼쪽)과 키신저. /AFP

키신저는 마오쩌둥의 중국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수립 불과 1년 만인 1950년 10월 6·25전쟁에 개입한 이유도 '웨이치(바둑) 본능이 발동하기 시작한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 누가 봐도 이제 간신히 내전을 끝내고 국민당 포로로부터 뺏은 무기로 대충 앞가림을 한 중국 인민해방군이 핵무기를 보유한 최신식 미국 군대와 맞붙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핵무기의 파괴력을 동원한 서구의 전쟁 억제 개념이 '공격해 올 가능성이 있는 적에게 피해의 위험을 부풀려 보여줌으로써 전쟁을 피하자는 개념'이라면, 마오쩌둥이 채택한 중국식 전쟁 논리는 그와는 달랐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선제공격을 감행해서 심리적인 균형을 깨뜨림으로써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고, 그다음 정치적 타협을 시도하는 방식이었다. 키신저는 중국이 1954년에서 1958년 사이에 타이완 해협에서 취한 행동, 1962년 인도와의 국경 충돌, 1961~1971년 우수리강에서 소련과의 충돌, 1979년 중국·베트남 전쟁 때에도 기습적인 공격과, 이후의 정치적 타협이라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역사는 반복될 것인가. 키신저는 미국과 중국이 전략적 갈등 상황에 빠지게 되면, 1차 세계대전 직전의 유럽 상황이 아시아에서 벌어질 것이라 전망한다. 당시 유럽에서는 독일과 영국을 중심으로 서로 갈등하는 블록이 형성됐었다.

키신저는 40년 전 자신이 베이징을 비밀방문해서 저우언라이를 만났을 때 저우언라이가 "미국과 중국이 함께 세상을 뒤흔들지 말고, 함께 건설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했다고 공개했다. 키신저의 그런 희망은 그러나 체스나 바둑을 두는 입장인 미국과 중국의 경우에는 장밋빛 희망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40년 전 키신저―저우언라이 간 비밀 회담으로, 한반도는 미국과 중국이 배타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표적인 지역으로 남겨졌다. 애석하게도 중국이 남북한을 상대로 등거리 외교, 이이제이 전술을 구사하고 있는 이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이 책에는 나오지 않는다.

[키신저의 평가]

●저우언라이(周恩來·1898~1976)

"60여 년 공직 생활에서 나는 저우언라이보다도 더 강렬한 인상을 준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키는 작지만 우아한 자태며 표정이 풍부한 얼굴에 번득이는 눈빛으로, 그는 탁월한 지성과 품성으로 좌중을 압도했으며 읽을 수 없는 상대방의 심리를 꿰뚫어 보았다."(298쪽)

(왼쪽부터)저우언라이, 덩샤오핑, 장쩌민, 북한 김정은.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

"덩샤오핑은 인사말 등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거의 없었고, 마오쩌둥의 습관처럼 하고자 하는 말을 우화나 비유로 돌려 부드럽게 말하지도 않았다. 저우언라이처럼 배려하는 태도로 말을 포장하는 법도 없었고, 마오쩌둥처럼 나를 개인적 관심을 보일 만한 가치 있는 몇 안 되는 철학 친구로 대하지도 않았다. 우리 두 사람 모두 나랏일을 처리하기 위해 모인 것이며, 다소 불편한 국면이 있어도 사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정도로 모두 충분히 성숙한 사람이라는 것이 덩샤오핑의 태도였다."(397~398쪽)

●장쩌민(江澤民·1926~)

"철학자 왕인 마오쩌둥, 고급 관료인 저우언라이, 혹은 산전수전 다 겪은 국익의 수호자 덩샤오핑과 달리, 장쩌민은 사근사근한 가족처럼 행동했다.(…) 장쩌민은 철학적으로 우월함을 주장하지 않았다. 그는 미소 짓고, 크게 웃고,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상대방과 접촉하면서 유대를 확립했다. 중국이든 소련이든 이같이 격식을 차리지 않는 지도자는 전례가 없었다."(541쪽)

●북한

"북한은 스스로를 공산주의 국가로 선포했지만, 실제 권력은 단 한 가족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2011년 현재, 이 나라를 다스리는 가족의 우두머리는, 국제 관계의 경험은커녕 공산주의식 관리의 경험조차 전무한 스물일곱 살의 아들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혹은 알 수 없는 요소들 때문에 북한이 붕괴할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596쪽)

 

조선일보 조선닷컴

시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