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위기대처 능력 키우려면 스웨덴 '일하는 복지'부터 배워야

유럽발 재정위기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리스는 사실상 국가부도 상태이고, 유로존에서 경제규모가 3,4위인 이탈리아·스페인마저 흔들리고 있다. S&P는 유로존의 맹주인 프랑스의 국가 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에서 끌어내렸다. 조선일보와 삼성경제연구소는 신년 기획으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국가별로 위기에 얼마나 잘 견뎌왔는지, 또 앞으로 더 큰 위기가 닥칠 경우 얼마나 잘 대응할 수 있을지를 진단하는 지표를 개발, OECD 회원국 및 신흥국 등 총 41개국의 점수를 매겨보았다. 또 위기에 잘 버틴 나라 스위스와 스웨덴, 위기의 충격이 심한 유럽 국가 아일랜드와 영국, 신흥국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6개국을 현장 취재했다.

한국 경제의 현 좌표는 어정쩡한 상태다. 한국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얼마나 잘 대처했는지를 나타내는 '위기 대처 성과지수'가 41개국 중 15위를 기록해 비교적 선방한 편이지만, 앞으로 위기가 다시 닥칠 경우 버틸 수 있는 역량(위기 대처 역량지수)은 그보다 낮은 22위로 평가됐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그런대로 잘 넘겼지만, 앞으로 새로운 위기가 터져 신흥국들로 위기가 전이될 경우에는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얘기다. 위기를 기회로 살릴 수 있는 해법은 없을까. 이번에 르포를 다녀온 6개국 사례에서 우리는 5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①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다.

위기 대처 역량지수 1위를 차지한 스웨덴이 단적으로 보여주는 교훈이다. 스웨덴이 그리스처럼 정부가 걷은 돈보다 더 많이 내주는 '퍼주기 복지'로 일관했다면 이번 불황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스웨덴 개혁을 일궈낸 안데르스 보리 재무장관이 가장 먼저 손을 댄 건 실업수당이었다. 노는 실업자에겐 오리려 수당을 깎는 대신,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찾는 실업자에게는 수당을 더 주고 소득세율을 낮춰주는 등 일하는 사람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했다. 그 결과 취업자가 늘었고, 실업 급여 지출은 줄었다. 늘어난 세수는 더 많은 복지 혜택으로 돌아가는 복지 선순환이 일어났다.

반면 정부 능력보다 더 많은 돈을 퍼주는 남미의 복지국가 아르헨티나는 위기 대처 역량지수가 꼴찌로 평가됐다. 나라 살림도 어려운 판에 연간 예산의 60%를 복지자금으로 쓰고 있기 때문에 향후 위기가 재발되면 가장 취약한 나라로 꼽혔다. 아르헨티나의 복지지출은 한 해 예산의 30~40%인 선진국보다 높은 수준이며, 아르헨티나는 이 돈으로 국민 5명 중 4명에게 수당 등 각종 보조금을 나눠주고 있다.

②제조업이 힘이다.

유럽의 소국(小國) 스위스가 앞으로 위기가 닥칠 경우 잘 버틸 수 있는 9번째 나라로 꼽힐 수 있었던 건 강력한 제조업 때문이다. 스위스의 공산품 수출 비중은 88.3%로, 평가 대상 41개국 중 가장 높다. 부품에서 완제품에 이르기까지 높은 기술력이 뒷받침돼 흔들리지 않는 수출 강국이 됐다. 스위스는 위기대처 성과지수에서도 한국 다음으로 높은 16위에 올라 지난 위기도 잘 넘긴 것으로 평가됐다. 반면 똑같이 금융강국이면서 제조업을 등한시한 영국은 글로벌 경제위기에 심하게 타격을 입었다. 이번 조사에서 영국은 위기대처 성과(32위)와 위기대처 역량(26위) 모두 41개국 중 중하위권으로 처져 스위스와 대조적이었다.

③고통스럽지만 나라 빚을 줄이자.

영국이 반면교사다. 영국은 재정을 방만하게 관리해 오다 뒤늦게 긴축을 위해 연금 축소 방안을 꺼내들었다가 30년 만에 공공노조의 대파업을 불러일으켰다. 등록금도 3배나 인상해 대학생들의 저항을 가져왔다. 반면 브라질의 경우 악화된 재정을 되살리기 위해 카르도수 전 대통령이 1999년 연방정부가 지방정부의 재정을 지원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재정책임법'을 시행해 지방정부의 재정을 건전화하는 데 성공한 점은 시사하는 바 크다.

우리나라도 안심할 단계가 아니다. 우리나라 정부 부채는 GDP 대비 33.4%로 양호한 편이지만, 27개 공기업 부채 272조원을 합치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6.7%로 급증한다.

④경제에 '공짜 점심'은 절대 없다.

한때 강소국의 대명사였던 아일랜드가 위기에 풀썩 무너진 이유는 너도나도 빚을 내 집을 산 바람에 생긴 부동산 거품 때문이다. 무분별한 대출과 저금리 정책으로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지만, 금융위기 한 방에 부동산 가격은 반토막났다.

우리나라도 9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대출의 상당액이 집값 급등 시기에 늘어난 부동산 담보대출이다. 경기 급락으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 가계 대출이 부실화되고, 은행 등 금융회사의 부실이 심화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87%로 41개 평가대상국 가운데 13번째로 높다. 가계부채가 한국 경제의 가장 위험한 뇌관으로 꼽히고 있다.

⑤사회 통합을 강화해야 한다.

사회 통합이 잘 되어 있으면,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신속한 위기 극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위기 대처 역량지수의 항목 중 하나인 사회 통합에서 낮은 점수를 받고 있다(선진 29개국 중 24위, 41개국 중 25위). 사회 전반에 걸쳐 부정부패가 많다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스웨덴(2위), 독일(8위) 등 선진국이 사회 통합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은 부정부패가 적고 불평등도 낮아 사회적인 신뢰가 강하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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