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어(密語)… 그 은밀하고 몽롱한 상상

시를 몸으로 쓴다고들 하지만, 시인 김경주(36)에게 이 진술은 은유나 비유가 아니다. '몸에 관한 시적 몽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그의 새 산문집 '밀어(密語)'(문학동네)는 이 진술을 온몸으로 밀어붙인 자신의 존재증명. 귓불 머리카락 발목 무릎 눈동자 잇몸 목선 핏줄 가슴골 혀 유두 고막 젖무덤 솜털 관자놀이 등 40여 곳 넘는 비밀스러운 신체가 그 대상이다.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시적 재능"(대산창작기금 심사평)이란 격한 찬사를 받은 바 있는 이 '한국시의 젊은 피'는 이 부위들을 극단까지 사랑하고, 은밀하게 몽상하며, 논리와 이성만으로는 설명하기 곤란한 그 몽상을 섬세한 언어로 빚어낸다.

철학 종교학 인류학 생물학 문학사회학의 모세혈관까지 그물망처럼 뻗어나간 이 시적 몽상은 때로 난해하지만, 그 난해한 언어의 향연은 기묘하게도 사색의 근원이나 문장의 비문 여부를 제쳐두고, 독자를 자발적으로 몽롱하게 만드는 마력을 지녔다. 그중 몇 문장을 인용한다.

"몽정은 타인의 몸과 나누는 성교가 아니다. 자신의 육체와 벌이는 성교다."(몽정기 중에서)

"보통 비만인 사람에게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몸의 리듬은 선과 골격의 리듬이다. 쇄골에 빗물이 고이는 사람이 있다. 쇄골은 육체가 기적적으로 이루어낸 선의 풍경."(쇄골 중에서)

"사람은 상대가 좋아지지 않으면 절대로 그 사람의 귀를 만지지 않는다는 것이 내가 오랫동안 실험한 영역이다."(귓불 중에서)

"발목이 살 속에 감추고 있는 이 복숭아 한 송이는 발목의 오두막 안에 동글게 놓여 있다."(복사뼈 중에서)

"현대의 생물종학설(生物種學說)은 말한다. 미세한 단세포 짚신벌레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선천적인 생리 리듬에 의해 몸이 제어되며 모든 생물은 시계처럼 조절 능력이 있어 각자의 고유한 체내 리듬을 유지한다고. 항문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하루에 일정한 주기로 벌어졌다가 오므려지고 다물어졌다가 헤헤헤, 벌려지고 쪼그라들었다가 꽉 조이듯 항문 속에는 뻐꾸기가 산다. 뻐꾹, 뻐꾹, 새똥이 나온다."(항문 중에서)

불교에서는 부처의 말을 뜻하는 제목 '밀어'는 넓게는 200여 가지 넘는 정의가 있는 단어. 현재 중국 윈난성 리장에 머물고 있는 시인은 이메일 인터뷰에서 "그 200여 가지 의미 중 내가 집중한 정의는 '비밀'이었다"고 했다.

지난 시대 유행한 것처럼 몸을 '욕망'의 대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열망'의 대상으로 파악하고 싶었다는 것. 고유의 개별성에 갈증을 느끼고 열망하는 예술가로서, "나만이 알아보는 몸"을 진술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는 첫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2006) 이전부터 10년 넘게 실험극의 극작가와 연출자로 활동하며 장르를 가로지르는 '전천후 시인'. 현대시의 확장이 시극(詩劇)을 통해 가능하다는 신념 때문이다. 시와 극, 두 장르가 지닌 가족유사성이 시인을 자연스레 몸에 대한 탐구로 이끌었고, 이번에는 자신의 몸을 돌고 돌아 나온 현기증 같은 언어를 통해 독자들을 아득한 몽롱함으로 이끈다. 사진작가 전소연이 포착한 매혹적인 신체의 순간들이 48쪽의 화보로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