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나의 치료제… 붓 들고 함께 암 이겨내요"

그는 그렇게 독한 항암제 치료를 2년간 견뎠다. 마침내 암 덩어리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더욱이 암세포만 공격하는 표적 항암제가 개발되어 나오면서, 구토와 탈모의 고통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예술 활동이 유방암에서 저를 지켜준 최대 무기였어요. 그림이 없었다면 한쪽 가슴을 잃은 상실감도 채워지지 않았고 지금 제가 여기에 없었을 수도 있었겠지요." 이번 행사도 그런 예술 치유 과정을 몸소 체험했기에 유방암 환자들과 이를 공유하고 싶어서 이뤄진 것이라고 했다. 오는 25일 이뤄지는 힐링 갤러리는 다국적 제약회사 '한국 로슈'와 한국유방암환우연합재단 후원으로 이뤄졌다.

박씨는 현재 유방암과 함께하는 인생을 산다. 3주에 한 번 병원에서 항암제를 맞는 것 외에는 일반 사람과 똑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외국에서는 예술 활동을 통해 암 환자의 고통과 우울증을 줄여주는 치유 프로그램이 활성화돼 있다"며 "스스로 낫겠다는 희망 속에서 자연스럽게 암을 이겨낼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3층 미술 작업실. 이곳에서 캔버스와 물감 팔레트를 앞에 두고 다소 어설픈 붓질로 그림을 그리는 중·장년 여성 17명, 그리고 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화가는 모두 유방암 환자이다. "어머! 색감이 참 좋네요. 화가를 해도 되겠어요." 화가의 칭찬에 다들 "까르르~" 하며 웃음을 터뜨린다. 참가 여성들은 여고 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예술 활동을 통해 암 투병 의지를 북돋우는 아트 세라피(therapy) 작업으로 진행된 이 행사의 이름은 '힐링(healing·치유) 갤러리'이다.

이를 주도한 재미(在美) 화가 박보순(61)씨는 20년째 유방암과 싸우고 있다. 발병과 재발, 투병을 반복하고 있다. 그는 홍익대 미대를 나와 미국으로 건너가 30년 넘게 주로 뉴욕에서 미술 작품 활동을 해왔다. 지난 2000년에는 '뉴욕의 화가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유방암 투병 이후 삶과 죽음의 단면들을 특유의 감각적 표현으로 그려내는 화가로 평가받는다.

유방암은 그의 나이 마흔한 살 때인 지난 1992년 왼쪽 가슴에 찾아왔다. 비교적 초기여서 당시에는 암 덩어리만 제거하는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6년 후 유방암은 재발했다. 이번에는 왼쪽 가슴 전체를 제거하는 수술을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4년 만에 더 센 놈이 왔다. 유방암이 뼈와 간까지 전이된 것이다. 의사는 치료를 해도 길어야 2년 정도 살 것이라고 했다. 시한부 선고나 마찬가지였다. 어둠이 그의 작가적 영혼을 덮었다. "수술 후유증으로 부어오른 팔을 억지로 붙잡고 극한 절망 속에서도 붓을 들었어요. 그렇게 그림 작업에 하루 이틀 몰두하다 보니 내 팔이 어느새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거예요. 그때부터 유방암으로 죽지는 않겠다는 희망이 들더라고요." 작가가 그린 것은 희망의 빛이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