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회 골든글로브] 색깔없이 선명했다, 소리없이 강렬했다

    입력 : 2012.01.17 03:09

    흑백 무성 영화 '아티스트' 작품상·남우주연상·음악상 3관왕

    '휴고' 마틴 스코시지 감독상, 메릴 스트립은 여우주연상
    영화 드라마 부문 '디센던트' 작품상·남우주연상 2관왕

    왼쪽부터 영화부문(드라마) 여우주연상 메릴 스트립, 영화부문(드라마) 남우주연상 조지 클루니와 여자친구 스테이시 키블러, 영화부문(코미디·뮤지컬) 여우주연상 미셸 윌리엄스. /로이터
    15일(현지 시각) 오후 미국 LA 베벌리힐스에서 열린 제69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프랑스 출신 미셸 하자나비시우스 감독의 흑백 무성(無聲)영화 '아티스트(The Artist)'가 뮤지컬·코미디부문 작품상, 남우주연상, 음악상 등 3관왕에 올랐다. 1920년대 몰락해가는 무성 영화계의 미남 스타와 유성 영화계의 샛별 여배우 간 사랑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같은 부문 여우주연상은 '마이 위크 위드 마릴린(My Week with Marilyn)'에서 마릴린 먼로 역을 소화한 미셸 윌리엄스가 차지했다.

    왼쪽부터 TV부문 여우조연상과 여우주연상을 각각 받은 제시카 랭(왼쪽)과 클레어 데인즈, 감독상 마틴 스코시지. /AP·로이터

    영화를 드라마와 뮤지컬·코미디 부문으로 나눠 심사하는 골든글로브는 올해 드라마 부문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으로 각각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디센던트(The Descendants)'와 이 영화 주인공 조지 클루니를 선택했다. 여우주연상은 '아이언 레이디(The Iron Lady)'에서 영국의 전 수상 마거릿 대처를 연기한 메릴 스트립에게 돌아갔다. 두 분야를 통틀어 한 사람만 선정하는 감독상은 '휴고(Hugo)'의 마틴 스코시지가 안았고,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Driving Miss Daisy)'로 1990년 이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모건 프리먼은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프랑스 코미디 배우 장 뒤자르댕이 15일(현지시각)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을 받은 뒤 익살스러운 표정과 포즈로 사진기자들 앞에 섰다. 그는 수상소감에서“인상이 강하고, 얼굴이 너무 커서 영화에 출연할 수 없을 것이란 얘기도 들었었다”고 밝혔다. /AP 뉴시스
    TV부문 드라마 작품상은 케이블채널 쇼타임에서 방영된 '홈랜드(Homeland)'가, 코미디 부문에서는 '모던 패밀리(Modern Family)'가 수상했다. 왕년의 섹시스타 제시카 랭이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American Horror Story)'로 TV 시리즈 여우조연상을, 클레어 데인즈가 '홈랜드'로 TV 드라마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골든글로브상은 LA지역 대중문화 전담 외신기자 90여 명으로 구성된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가 주는 상이다. 한 달 뒤 열릴 아카데미 시상식을 미리 점칠 수 있는 잣대로 평가돼 해마다 크게 주목받아 왔다. 그러나 작품상의 경우 최근 7년간 두 시상식에서 같은 결론이 나온 예는 2008년 '슬럼 독 밀리어네어' 한 편뿐이었다.

     

    파리의 열쇠공, 영화계의 총아로 - 뮤지컬·코미디부문 남우주연상 장 뒤자르댕

    ‘골든 글로브’가 15일(현지시각) 69년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썼다. 영화 부문에서 처음으로 프랑스 배우 장 뒤자르댕(40)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긴 것이다.

    뒤자르댕은 지난해 4월 칸 영화제에서도 같은 작품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때 시상대에 올라온 뒤자르댕은 흥분된 표정으로 심사위원장인 미국 원로배우 로버트 드 니로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러더니 일어나서 춤을 추고 소리를 질렀다. 예상치 못한 수상에 놀라 어쩔 줄 몰랐던 것이다. 놀란 건 그만이 아니었다. 뉴욕타임스는 “턱이 떨어질 정도로 놀랐다”고 했고, LA타임스는 “‘언더독’(underdog·이기거나 성공할 가능성이 적은 약자)이 영화제의 총아가 됐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낯설지만 뒤자르댕은 프랑스에선 이미 코미디 연기로 명성을 쌓은 유명 배우이다. 파리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열쇠공으로 생계를 꾸리면서 20대 중반부터 술집과 카바레에서 코미디 연기를 했다. 그는 지난해 ‘스크린데일리’지와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네댓명의 관객 앞에서 공연해도 상관없었다. 내가 나를 위해 공연했으니 그 즐거움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고 했다. 그는 그룹코미디공연으로 이름을 알린 뒤 TV와 영화에 진출했다. 그가 2005년에 주연한 영화 ‘니스의 브리스’(Brice de Nice)는 관객 450만명을 동원하면서 흥행 1위에 올라섰다.

    오랫동안 코미디 연기가 몸에 익은 그에게 ‘아티스트’의 무성(無聲) 연기는 ‘자기 옷’을 입은 것이었다. 그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말이 곧 짐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내 몸으로 할 수 있는 표현을 굳이 말로 할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미국 언론은 다음 달 열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그를 유력한 남우주연상 수상 후보로 꼽으며 같은 프랑스 여배우 마리옹 꼬띠아르와 비교하고 있다. 꼬띠아르는 ‘라 비 앙 로즈’(2007)로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뒤 할리우드가 가장 자주 찾는 여배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