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시장 침체? 중견 업체들이 신흥 강자로

작년 말 건설업계에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주택업체인 부영이 단 하루 만에 1조원어치가 넘는 주택사업 용지를 사들인 것. 이 회사는 경기 화성 동탄2신도시와 화성 향남2지구 등 2개 지역에서 입찰 방식으로 공급한 아파트 용지 14개 필지를 모두 쓸어담았다. 한 대형 건설사 임원은 "주택시장이 호황일 때도 섣불리 베팅하기 힘든 규모"라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부영 측은 "주택업체가 사업용지를 사들이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경기가) 바닥일 때 사야 미래에 대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침체로 대형 건설사는 작년부터 주택사업을 대폭 줄이는 추세다. 하지만 일부 중견업체는 주택공급을 늘리고 아파트 용지 확보에도 열을 올리면서 주택 시장의 신흥 강자로 주목받고 있다. 부영을 비롯해 호반건설·동원개발·㈜동일·우미건설 등이 대표적인 업체로 꼽힌다.

부동산 정보업체인 닥터아파트에 따르면 지난해 아파트 분양실적 상위 10개 업체 중에서 호반건설과 동원개발이 GS건설(7위)과 대림산업(8위)를 제치고 각각 5, 6위를 기록했다. 호반건설은 5700여가구, 동원개발은 4900여가구를 분양했다. 4400여가구를 공급한 ㈜동일이 9위에 올랐고, 우미건설과 부영도 각각 3000가구 이상을 분양했다.

분양 성적도 좋다. 부영은 작년 말 충남 천안 등 3곳에서 공급한 3000여가구의 분양률이 80%에 육박한다. 호반건설은 지난해 6월 광주광역시 수완지구2차를 100% 분양한 데 이어 광주 주월동, 광교신도시 등지에서 최고 30대1에 가까운 높은 청약률로 잇따라 대박을 터뜨렸다. 동원개발과 ㈜동일도 부산과 경남 양산 등지에서 분양한 아파트가 초기에 계약이 끝났다.

향후 주택경기를 어둡게 보는 대형 업체와 달리 이들 중견사들은 "지금이 바닥"이라며 아파트 용지 확보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부영은 지난해에만 2조5000억원어치가 넘는 땅을 샀다. 호반건설도 울산혁신도시와 광주 첨단2지구 등에서 8개 필지를 사들였다. 호반건설 관계자는 "지난해 매출이 2조2000억원대로 2년 전보다 30% 이상 늘었다"면서 "올해도 7000가구 이상을 분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중견업체의 공격 경영을 우려하는 시각도 없지 않다. 한때 잘나가던 주택전문업체들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금난으로 줄줄이 쓰러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주목받는 중견 업체들은 탄탄한 재무구조를 기반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부영은 현금성 자산만 7000억원 넘게 쌓아놓은 것으로 알려졌고, 호반건설과 동원개발은 부채비율이 50~60%대에 불과해 사실상 무차입 경영을 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요즘 대형사의 발목을 잡고 있는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리스크'도 거의 없다. 사업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분양위험이 적은 택지개발지구나 신도시의 땅을 직접 사서 분양하는 이른바 자체사업만 하고 있다. 피데스개발 김승배 대표는 "소비자들이 주택시장에서 대형사의 브랜드보다 평면이나 분양가 경쟁력에서 앞서는 아파트를 찾고 있는 것도 중견 업체의 약진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