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민주주의, SNS를 포용해야 산다"… "정당민주주의, SNS에 잡아 먹혀선 안돼"

‘휴대폰 엄지족이 당 조직을 압도’. 지난 15일 민주통합당 지도부 선출 투표결과는 이렇게 요약된다. 전체 1~3위가 시민 선거인단 모바일 투표순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에 앞선 12일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는 정부가 7년 넘게 끌어온 KTX 경쟁체제 도입 방안에 ‘반대’를 결의했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상에서 ‘철도 민영화’라며 반대가 많다”는 눈높이위원회 보고가 있은 지 10여분 만이었다. 한나라당은 올해 총선 후보 공천 심사에서도 SNS 실적 반영을 검토하기로 했다.

대의(代議)민주주의냐 SNS민주주의냐, 정당민주주의냐 대중민주주의냐.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논쟁이 뜨겁다. 수식어를 달리한 민주주의론(論)이 맞부딪치고 있다. 전통적인 민주정치의 틀은 정당·의회를 골간으로 한 대의민주제였다. 그러나 SNS 등장 후 대중의 직접 참여를 강조하는 소셜민주주의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정당과 대의제를 연구해온 두 학자 인터뷰를 통해 쟁점을 짚어봤다.

임혁백 고려대 교수 - SNS는 혁명적 소통이다

한국 의회·정당 신뢰도 바닥, SNS의 이동성·속도의 위력 24시간 정치 참여 가능… 하지만 정당과 대립은 아니다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7일 "SNS와 더불어 시민사회와 정당의 경계가 점점 허물어지고 있다"며 "대의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SNS를 포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일찍이 2009년 저서 '신유목적(Neo-Nomadic) 민주주의'에서 IT혁명시대의 민주주의에 주목했다.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라고 보는 이유는?

"지난해 중동 민주혁명뿐 아니라 대의민주제가 가장 앞섰다는 미국에서도 심장부 월가 점령 시위 등 전 세계적으로 SNS를 매개로 한 항거가 빗발쳤다. 한국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여야 대표 즉 제도권 대의제 대표선수들이 소셜미디어 지지를 받은 시민 대표에게 졌다. 위기는 잠복해 있었다. 아시안 바로미터 서베이 조사를 보면 의회·정당에 대한 신뢰도가 한국이 아시아에서 꼴찌다. 일본과 대만도 17~20%선인데 한국은 정당이 9%, 국회가 7%다. 이 정도 신뢰를 받는 대의기구를 두고 대표라 할 수 있나."

―대의제 위기의 원인은?

"대표가 대표 행세를 못하니 그렇다. 99% 대표여야 하는데 1%를 대표해온 것이다. 세계 전역에 번진 분노의 핵심이다.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 분노의 표출을 가능하게 한 것이 SNS 기반인 것이다. 웹 2.0시대는 이동성과 속도에 의한 위력이 엄청나다. 혁명적 소통기구다."

―그것이 민주주의에 갖는 의미는?

"그전까지 대의제민주주의는 주기적 선거 때에만 참여가 이뤄졌지만 이제 24시간 가동되는 온라인을 통해 참여가 가능해졌다. 온·오프로 분리돼 있던 정치 참여가 융합하고 참여가 일상화하고 있다. SNS는 정치 과정에서 정당의 독과점구조, 대표는 정당에서 나와야 한다는 인식을 깼다. 시민사회와 정당 간 구분도 흐려졌다. 정치학자로서 상당히 혼란스러운 시기다. 앞으로 그런 경향이 더 강해질 것이다."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도 모바일 투표가 결정적이었다.

"국민경선제나 모바일 참여는 확대돼야 한다. 국회의원 후보를 밀실에서 낙점하고 국민에게 투표나 하라고 하면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는 유럽식의 계급 정당이 아니고 서포터스(supporters·선거철 지지자) 정당이다. 유럽은 노조원을 비롯한 열성 당원들이 당비도 내고 당을 이끌어 간다. 우리나라는 당비 내는 당원이 없다. 그런 당원에게만 투표권을 줘야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우리는 정보통신 인프라가 좋기 때문에 잘 활용하면 한국 민주주의에 획기적 발전에 도움된다고 본다."

―SNS상에서 의견 쏠림현상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온라인상의 배타주의나 쏠림현상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SNS에서 극단주의가 나왔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나꼼수'수준의 이야기를 정치적 극단주의로 볼 수는 없다. 정치 극단주의란 인종주의나 나치즘 같은 것을 말한다. SNS는 역사가 짧기 때문에 에티켓이 자리 잡기까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정당민주주의는 수명을 다한 것인가?

"SNS는 기본적으로 소통기구이고 표출 통로이다. 아직까지는 대표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기능을 갖는 것이지 스스로 결정하지는 못한다. 그런 권한을 위임받지는 못했다. SNS를 정당과 대립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정당민주주의나 대의민주주의가 존속하기 위해서도 SNS를 포용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올해 선거에서 정당을 비롯한 제도권 정치 자체가 시험대에 올랐다. 당파적 차원을 떠나서 대의제가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 - SNS는 대표·책임성이 없다

정당 안 거친 정치 참여 늘고 새로운 이슈 분출로 도전받아, 하지만 SNS는 손끝으로 결정… 의회·정당 기제는 더욱 중요

“SNS 공간이 정치제도로 이어지는 소통과 여론 형성 공간으로는 훌륭하지만 그것이 의회만큼 고른 대표성이 있는지, 정당의 숙의(熟議)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최근 저서 ‘통일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를 통해 정당의 중요성을 논한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7일 인터뷰에서도 정당정치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정당민주주의 위기론에 동의하나?

“위기라기보다 도전이란 표현이 맞는다. 정보화혁명 이후 정당을 통하지 않고서도 정치 의사를 표출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 2002년, 2008년 촛불 시위에서 본 것처럼 정당을 거치지 않은 정치 참여가 조직되고 일어나고 있다. 또 사회가 다원화되면서 기존 정당이 다뤄오지 않은 이슈가 분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SNS 환경은 민주주의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양면성이 있다. 민주주의라는 것 자체가 다수의 참여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긍정적 측면이 있다. 하지만 조심해야 할 게 있다.”

―어떤 것을 말하나?

“첫째, SNS 등으로 여러 의견이 표출되지만, 그게 고른 대표성을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면이 있다. 지금 의회 구조는 지역적·기능적으로 민의를 최대한 고르게 대표하려 하지만 SNS는 특정 성향에 따라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끼리 모이는 경향이 있다. 둘째, 정치적 책임성 문제다. SNS 의견에 따라 결정하고, 실행하고, 그에 따른 결과가 나왔을 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기 어렵다. 셋째, 여론 흐름이란 쉽게 바뀔 수 있다. 정치 안정성은 어떻게 담보할 건가. 넷째, 의회의 논의는 의원들이 기본적으로 다음 선거를 통해 책임지기 때문에 더 진지할 수 있는 반면, 모바일 참여는 손끝의 터치로 쉽게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쟁점에 대한 사회적 타협을 도출하고, 구속력 있는 결정을 내리는 데는 의회나 정당기제가 더 중요하다.”

―외국은 어떤가?

“유럽만 봐도 정당이 SNS를 ‘기반’으로 활용하지 여기에 잡아먹히는 상황은 아니다. 정당 제도화가 강한 영국은 최근 정당들이 트위터로 선거운동을 벌이지만 정당이 잡아먹힐 정도의 상황으로 가지 않는다. 우리는 정당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직접민주주의에 끌려가는 측면이 강하다.”

―정당의 모바일 투표 참여 확대는 어떻게 보나?

“정치 참여를 이끌어내고 관심을 끌어낸 공이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정당에 귀속감이나 충성심을 가진 당원이 아닌 대중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방식은 정당정치의 안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

―최근 정당의 조직 개편 논란이 일고 있다.

“그간 당원을 사적 인맥으로 확장해왔기 때문에 이 역시 대표성에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중앙당이나 당원 조직까지 없애고 의원들만 살아남겠다는 생각은 적절치 않다. 가령 우리가 대통령 단임제인데 5년 후 국민을 실망시켰다면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수 있나. 중앙당은 없고 대통령은 떠나버리고 나면 책임 소재가 없어진다. 또 비례대표는 어떻게 뽑나. 대단히 비현실적인 방안이다.”

―소셜미디어의 정치적 편향성 논란은 어떻게 보나.

“디지털 툴이 특정 이념과 연계된 것은 아니다. 보수·진보의 구분이라기보다 권력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현 권력에 불만을 털어내는 공간으로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측면이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