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혹한 현실, 그대 신념을 흔든다면…

인간은 어느 순간 부조리한 선택을 하도록 강요받을 때가 있다. 때로는 고통을 줄이기 위해 빨리 굴복해버린 뒤 현실을 탓하며 스스로를 용서한다.

프랑스 감독 자비에 보부아의 '신과 인간'은 배경이 수도원이고 주인공은 수도사들이지만, 종교 영화도 순교자에 관한 영화도 아니다. 선택을 강요받았을 때 신념과 선의를 가진 인간들은 어떤 길을 걸어가는지를 담담히 보여주는 영화다.

1996년 알제리 산골의 한 수도원이 배경이다. 프랑스 수도사 7명은 마을 주민들을 치료하는 진료소를 운영하고 있다. 포교 활동을 위해 이곳에 온 수도사들은 무슬림인 마을 주민들의 고민을 상담해주고 이들이 여는 잔치에도 참가한다. 80세가 넘은 수도사는 마을 소녀의 애정 문제까지 상담해준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Of Gods and Men)에서 신은 단수형이 아니라 복수형이다. '어떤 신을 믿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믿느냐'가 문제라는 뜻일게다.

수도사들과 주민들의 평화로운 공존은 무장 무슬림반군과 알제리 정부군의 대립으로 위태로워진다. 무장 무슬림반군은 수도사들을 위협하고, 알제리 정부군은 이들을 프랑스로 돌려보내려고 한다. 수도사들은 "수도원을 떠날 수 없다"는 쪽과, "남아있는 건 집단자살을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쪽으로 갈리면서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한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무장 무슬림반군을 기다리며 수도사들은 매일 수도원을 포기할지 여부를 놓고 회의를 열어 '조용한 전투'를 치른다. 적막으로 채워진 화면이 많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기에 관객들은 비극적 결말을 알고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 가슴에 돌 하나 얹힌 듯한 먹먹함을 느끼는 건 이 때문이 아니다. 관객을 숙연하게 만드는 건, 수도사들이 신앙과 목숨 사이에서 부조리한 선택을 강요당한 와중에도 자신의 신념을 갖고 치열하게 고뇌하는 과정 그것이다.

2010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지난해에는 프랑스 최고 권위 영화제인 세자르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1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 이것이 포인트

#장면 무슬림 반군의 습격을 받기 직전 수도사들은 소박한 만찬을 갖는다. ‘백조의 호수’를 틀어놓고 즐거워하던 이들은 곧 눈물이 고인다.

#대사 “당신들은 가지이고, 우리가 새입니다. 가지가 없으면 새가 어디에 앉겠어요?”(수도원을 떠나는 문제로 고민하는 수도사들에게 마을의 무슬림 주민이 하는 말)

#해외평 ‘배우들의 연기는 압도적이고 스토리는 강력하며 카메라는 살아있다.’(뉴욕타임스)

#이런 분들 보세요 쉬운 선택을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하는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