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신문화의 탄생'] [6] "오늘은 투수, 내일은 골키퍼, 모레는 마라토너…"

"조선이 나은 야구계 기린아…돌연 야구계로부터 은퇴할 것을 언명하야…연전(延專) 축구 황금시대의 제일인자로서, 현해탄을 건너서나 또는 멀리 상해까지도 수차 원정하야 그의 용명은 대외적으로 널리 떨친 바…뿐만 아니라 륙상경기에 잇서서도 일즉이 사백메돌(400m)의 조선 최고 기록을 작성하야 '만능 선수'의 칭호를 밧고 잇섯다."

조선일보 1937년 3월 6일자는, '조선의 베이브 루스'란 별명을 듣던 이영민(李榮敏·33)의 은퇴 소식을 전했다. 조선에 유입된 뒤 극소수 혹은 일본인 위주로 즐기던 각종 근대 스포츠가 3·1운동 후 대중화의 봇물을 이루면서, 1920~30년대 활약한 선수 대부분은'만능 선수'였다.

대구 계성중학에 다니던 이영민이 경성 무대에 나타난 것은 1923년이었다. 그해 7월 11일 오후 3시부터 배재학교 운동장에서 동경유학생 팀과 배재고보의 야구 경기가 열렸다. 배재의 투수는 장의식(張儀植), 포수는 함용화(咸龍華), 1루수는 서병수(徐丙守)였다. 야구 경기가 끝난 뒤, 이어서 오후 6시부터 열린 축구 경기에 장은 골키퍼, 함은 하프백, 서는 포워드로 또 운동장을 누볐다. 계성에서 '스카우트' 된 이영민도 이 축구 경기에 포워드로 등장했다.(1923년 7월 12일자)

1924년은 '배재 삼총사'가 운동계에 이름을 드날린 해였다. 5월 17일 열린 '제5회 전조선 야구대회' 결승전에서 전(前) 대회 우승자인 휘문에 설욕을 벼르던 배재는 투수 백기주(白基珠), 포수 함용화, 3루수 이영민 등이 투타에서 맹활약하여 휘문을 22대2로 대파하고 우승했다.(1924년 5월 19일자) '삼총사'는 그해 10월 열린 '제4회 전조선 축구대회'엔 백이 골키퍼, 함은 센터하프, 이는 라이트윙으로 출전했고, 결승에서 평양고보를 3대0으로 격파하고 우승했다.(1924년 11월 3일자) 이들은 또 며칠 뒤 열린 '제2회 전조선 중등학교 육상경기'에 모두 출전, 이는 400m, 함은 원반·투창·높이뛰기에서 입상했고, 백은 '팔리(八?/8마일)마라손' 5위에 올랐다.(1924년 11월 10일자)

이영민은 1928년 6월 8일 경성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연전 대(對) 경성의전의 경기에서 '370척(?x)짜리(112m)' 홈런을 날려, 개장 4년 만에 터진 최초 홈런의 주인공이 됐다. 그리고 보름여 뒤 열린 '제3회 전조선 육상경기대회'에선 200·400m와 400·800·1600m 릴레이에서 우승, 5관왕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는 식산은행(殖銀) 야구단에 입단한 뒤에도 제2회 경(京)·평(平)축구에서 경성의 우승을 이끄는가 하면(1930년 12월 3일자), 1934년 10월 미 메이저리그 올스타팀이 일본을 방문했을 땐 조선 선수론 유일하게 우익수로 선발 출전했다.(1934년 10월 6일자)

훗날 '축구 대부(代父)'로 널리 알려지는 김용식(金容植)은 1934년 1월 개최된 '제10회 전조선 남녀 빙상대회'에서 1500·5000·1만m 등 3관왕을 차지한 스케이터였고(1934년 1월 23일자), 당시 축구 골키퍼로 명성을 얻은 이혜봉(李惠逢)은 농구와 체조 선수로도 이름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