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차잔고(증권사가 고객에게 빌려준 주식 규모) 급증 종목, 주가도 상승세

주식 투자로 여유 자금을 굴리는 투자자 A씨는 요즘 아침에 눈 뜨기가 두렵다. 국내 증시가 지난밤 유럽과 미국 상황에 따라 방향성 없이 등락을 거듭하고 있어 주식 투자로 수익을 얻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A씨와 같은 투자자들이 미리 주가 반등을 점쳐보는 데 참고할 만한 지표는 무엇일까. 딱 떨어지는 정답은 없지만, 요즘같이 거래량이 적은 주식시장에서 대차잔고가 늘어나는 종목에 주목하는 것도 좋은 투자 방법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대차잔고 늘어나는 종목 주목

대차잔고는 증권회사가 고객들에게 주식을 얼마나 빌려줬는지를 나타내는 수치다. 보통 대차잔고가 늘어나면 비싼 주식을 빌려 팔고 주가가 하락하면 주식을 되갚는, 이른바 '공매도(空賣渡)'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공매도한 투자자는 주식을 되갚아야 하기 때문에 다시 주식을 매수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공매도 이후 주가가 반등하는 것이다. 이것이 '숏 커버링(빌린 주식을 되갚는 것)'이다.

특히 17일 증시가 크게 반등하는 상황에서는 대차잔고가 늘어난 종목이 더 크게 상승했다. IBK투자증권의 김현준 연구원은 "주가가 오르면 주가하락을 기대해 공매도했던 투자자들이 결국 손실을 버티지 못한 채 다시 주식을 사서 채워넣고, 이 과정에서 다시 주가가 더 오르는 '상승작용'이 나타난다"며 대차잔고가 급증했던 종목에 관심을 갖는 것도 좋은 투자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조선·금융주 대차잔고 증가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대차잔고가 급증한 종목은 IT(전기전자)와 금융, 자동차, 조선, 화학주였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전기ㆍLG디스플레이 등 IT주와 자동차주 현대모비스와 현대차·기아차 대차잔고도 늘었다. 이달 들어 삼성전자가 110만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고, 증시가 박스권에서 움직이는 상황에서 자동차주가 강세를 보이자 차익 실현 매물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에 투자자들이 주가 하락에 베팅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우려가 다시 커지자 금융주 KB금융·신한지주·우리금융과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 조선주에 대한 대차잔고도 늘었다. 이 밖에도 태양광 업체인 OCI·LG화학 대차잔고도 증가했다.

이들 종목 중 최근 주가가 급등하는 종목들이 속속 나오기 시작했다. 17일 증시가 2% 가까이 상승하는 가운데 대차잔고가 크게 늘었던 금융주가 급등했다. 신한지주가 7% 넘게 오르며 지난 3일 이후 처음 4만1000원을 회복했고, KB금융과 우리금융도 각각 5~6% 올랐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6일(거래일) 동안 주가가 9% 뛰었고, 삼성중공업은 7일 연속 상승했다. 최근 미국 태양광 시장에 진출 소식이 전해지며 OCI는 지난 5일간 15% 넘게 올랐다. 하나대투증권의 이정헌 팀장은 "태양광 업황 회복에 대한 기대와 함께 숏 커버링 물량이 들어오며 주가가 반등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매도 비중과 상환 비중 따져봐야"

다만 대차잔고가 증가했다고 무조건 주가 상승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공매도 비중이 적은 종목의 경우 숏커버링이 발생하더라도 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수 있고, 기업 가치가 크게 떨어진 경우 공매도한 투자자들이 빌린 주식을 갚았다면 주가가 오를 여지는 그만큼 적어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해당 종목의 업황 전망과 함께 시가총액 중 대차잔고가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 늘어난 대차잔고 중 상환 비율도 함께 따져봐야 한다. 대차잔고가 많이 늘어났지만 이미 빌린 주식을 많이 갚았다면 숏 커버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작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월 대차잔고가 증가한 종목 중 오리온과 하이닉스, 삼성중공업, 현대차, 현대중공업, LG화학, 삼성전기, LG디스플레이는 이미 대차잔고 상환 비율이 15%를 웃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