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회비 300만원짜리도 출시…VVIP 마케팅에 목매는 카드사

"VVIP 카드 마케팅 경쟁에 불이 붙어, 적자 폭이 커지더라도 부가 서비스를 더 강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A카드사 대표는 최근 연회비 200만원짜리 VVIP 카드(카드 업계에서 초우량 고객 전용 카드를 지칭하는 용어) 때문에 연간 수억원을 적자 보는 상황인데도 회원에 대한 혜택을 더 늘려야 하는 딜레마에 봉착해 있다. 그는 "궁여지책으로 상대적으로 비용이 덜 들어가는 서비스 아이디어를 열심히 짜내고 있다"고 말했다.

신용카드 업계의 VVIP 카드 마케팅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카드사들은 연회비 300만원짜리 VVIP 카드까지 잇따라 내놓을 예정이다. 예전에는 200만원짜리가 최고였다.

◇연회비 300만원짜리 VVIP 카드 등장

KB국민카드가 2월에 선보일 연회비 300만원짜리 카드는 회원에게 미국 그래미상, 오스카상에 참석할 수 있는 혜택 등 파격적인 부가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대카드도 기존 연회비 200만원짜리 블랙카드를 연회비 300만원으로 올리면서, 출입국 때 공항 의전 서비스를 추가하는 등 부가 서비스를 대폭 강화한다. 삼성카드도 상반기 중 파격적인 서비스를 갖춘 연회비 300만원짜리 VVIP 카드를 선보일 예정이다.

카드사들은 왜 VVIP 카드 마케팅에 목을 매는 걸까. B카드사의 부사장은 "회사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주면서 '회사가 믿을 만하다'는 인상을 심어줘 신규 고객을 유치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카드사 임원은 "신용등급 7등급 미만의 저신용자에게 카드 발급이 중단되는 등 카드 영업 환경이 나빠지면서 VVIP 카드로 새 시장을 창출해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초우량 고객을 다른 카드사에 뺏길 수 없다는 '자존심'도 과당 경쟁을 촉발하는 요인이다.

◇연회비의 최대 5배에 달하는 혜택

카드사들은 영업 비밀이란 이유로 VVIP 카드의 수익 구조를 공개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 적자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C카드사의 임원은 "VVIP 카드는 연회비의 최대 5배까지 부가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예컨대 VVIP 회원이 항공권 좌석 승급(업그레이드) 서비스를 활용해 비즈니스석에서 일등석으로 올릴 경우(서울~미국 뉴욕행 항공편 기준) 좌석 승급 비용이 500만원에 이른다. 항공사와 별도 계약을 맺어 좌석 승급 비용을 할인받기도 하지만, 비용의 30% 이상은 카드사가 부담한다.

반면 VVIP 카드 회원이 카드사에 안겨주는 수익은 쥐꼬리다. B카드사 VVIP 회원은 매달 평균 800만원을 카드로 결제한다. 카드사에 수입으로 들어오는 가맹점 수수료는 16만원(2%) 수준이다. 이 가운데 7~8만원은 다시 항공권 마일리지 같은 마케팅 비용으로 쓰여 카드사 수중에 떨어지는 수입은 연간 90여만원꼴이다. 연회비와 가맹점 수수료를 합친 수익(290만원)보다 나가는 비용(평균 400만원대로 추정)이 많다.

◇고금리 카드론으로 손실 벌충

카드사들은 VVIP 카드 영업에서 발생한 손실을 연 20%대 고금리의 카드론, 현금 서비스 관련 수익으로 메우고 있다. 이에 따라 카드사들이 부유층 고객에겐 과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서민층 고객에겐 고금리 대출로 폭리를 취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신한카드의 한 임원은 "고금리 카드 대출로 번 돈으로 초우량 고객에게 퍼주는 행위가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불공정한 영업이라는 결론을 내려 VVIP 카드 상품을 출시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금융소비자연맹 조남희 사무총장은 "카드사가 서민층 회원으로부터 돈을 벌어 '수퍼 리치'만을 위한 혜택을 늘리면서 소외 계층을 상대로 한 사회 공헌 활동을 한다고 열심히 선전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