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또다른 나] 11년째 무에타이 수련하는 오영준(36) SK C&C 과장

나는 파이터다. 11년째 태국의 격투기인 무에타이(Muaythai)를 수련하고 있다.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무에타이 협회에 정식으로 등록한 선수이다. 2008년 데뷔전을 가진 이래 지금까지 9차례 링 위에 올라 5번 이겼고, 4번 졌다.

주먹만 쓰는 게 아니라 발차기와 무릎, 팔꿈치까지 사용하는 격한 운동을 왜 하는지, 이상하게 보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다른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면이 있지 않을까. 어떤 사람은 성악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어른이 인형에 빠져 있지 않은가. 나는 그게 무에타이일 뿐이다. 성악과 인형, 무에타이는 다를 것이 없다. 다만, 그것을 얼마나 좋아하느냐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내 일상은 단순하다. 우리 회사는 SK그룹 계열사 및 여러 민간·공공 기업들에 IT(정보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계약에 따라 서비스가 적절하게 제공되고 있는지 측정하고 평가하는 것이 나의 업무다. 무에타이 수련은 매일 저녁 퇴근 후 2~3시간씩 한다. 경기도 분당의 회사에서 차를 몰고 서울 강동구의 영동삼산무에타이체육관을 찾아가 밤 10시까지 샌드백과 미트를 두드린다. 저녁식사는 운동하기 좋도록 위를 비우기 위해 단백질 보충제(프로틴 파우더)만 조금 먹는다. 나는 무엇이든 한번 시작하면 꾸준히 하는 편이어서 영어학원도 6년째 주말마다 빼놓지 않고 다니고 있다.

나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했다. 특별한 말썽 없이 순탄하게 살아왔다. 누구와 싸움 한 번 해보지 않았다. 지금은 성인 남자의 평균 키라고 자부(?)하지만, 초등학교 때는 교실 맨 앞줄에 앉은 적도 있다. 그래서였을까, 비쩍 마르고 체구도 작은 태국 사람들이 덩치 큰 서양사람들을 쓰러뜨리는 무에타이 경기 장면을 우연히 TV에서 보고 경탄을 금치 못했다. 결국 대학에 진학한 이후 3년간 무에타이 도장을 다녔다. 그리고 입사 이후 2년 만인 지난 2004년 다시 무에타이 도장을 찾아 8년째 수련하고 있다. 매년 여름휴가 때는 무에타이의 본고장인 태국을 찾아가 일주일씩 훈련하고 돌아온다. 우리 체육관과 교류하는 방콕의 사시파파 체육관은 물론, 포 푸라묵 짐(Gym), 친 나라치 짐 등 10여 개 이상의 체육관에서 운동을 했다. 그러면서 태국말도 띄엄띄엄 할 정도가 됐다.

지난 2008년 2월 경기도 안양의 한 체육관에서 열렸던 데뷔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보통 격투기 선수라면 벌써 은퇴했을 32세의 나이에 체력 좋은 20세 선수와 싸웠는데, 상대방의 머리를 잡아 틀면서 무릎으로 안면부를 가격하는 '빰' 기술로 1회 TKO승을 거뒀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도 잠시, 한 달 뒤 열린 두 번째 경기에서는 판정패했다. 그리고 그해 신인왕전에선 준우승을 거뒀다.

나는 지금까지 KO패를 당한 적은 없다. 내가 생각해도 맷집은 괜찮은 편이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가드'가 좋기 때문에 얼굴 타격은 많이 받지 않는다. 링 위에서는 맞아도 아픈 줄을 모른다. 아픔보다는 얼얼한 느낌만 난다. 내가 공격할 때도 오로지 기술이 정확하게 들어가는가만 생각한다. 빗나가면 아쉽고 제대로 가격하면 만족감이 느껴진다. 승부에 연연하는 편은 아니다.

무에(Muay)는 '4가지를 묶는다'는 의미다. 우선 머리를 '몽콘'(머리를 보호하는 주술적 소품)으로 묶는다. 그리고 팔에는 '프락치앗'(팔에 묶는 띠), 주먹에는 붕대를 감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음'을 묶는다. 수련을 할수록 이 '마음'을 묶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내가 속한 주니어웰터급은 63.5㎏ 이하여야 한다. 평소 체중은 70㎏ 정도를 유지하다가 경기 3주 전부터 컨디션 조절에 들어가면서 감량을 한다. 모든 운동은 '3분, 1라운드' 단위로 나눠서 줄넘기 2라운드, 달리기 2라운드, 섀도복싱 1라운드, 미트 치기 5라운드 등을 하면 40~45분이 지나고, 나머지 15분 동안 턱걸이, 팔굽혀펴기 등 체력 훈련을 실시한다. 그리고 이를 매일 두 번 반복한다. 1~2주에 한 번씩은 10라운드 스파링을 뛴다. 시합을 앞두고 있을 때는 방독면을 쓰고 연습을 한다. 경기에서 마지막 라운드는 숨쉬기도 힘들다. 방독면 착용은 그런 상황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몸이 힘들 때면 머릿속은 오히려 맑아진다. 운동을 하면서 자정(自淨)이 되는 느낌, 그게 좋다.

그렇게 무에타이 수련을 통해 나는 예전의 나보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요즘은 막연하지만 목표가 하나 생겼다. 좀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챔피언을 한 번 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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