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공무원, 밤에는 야학의 수학교사랍니다"

"지수법칙은 공식의 특징을 잘 살펴 보고 문제를 푸셔야 합니다."

지난 17일 오후 8시쯤 수원시 팔달구 고등동 '수원 푸른빛 평생학교' 야학교실. 8개의 책상이 놓인 26㎡ 정도의 좁은 교실에서 양복 차림의 중년 남자가 자기보다 나이가 더 많아 보이는 학생 2명을 앞에 두고 수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수업을 듣던 김명자(60·수원시 정자2동)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선생님 지금 설명한 게 2가 6번 곱해진다는 뜻 아니에요?"라고 묻자, 공씨는 칠판에 '2×2×2×2×2×2'라고 써보였다. 그제야 김씨는 "그렇게 써주시니 이제 알겠네요"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는 경기도의회 총무담당관실 주무관 공석성(50)씨. 1990년 공직에 입문한 공씨는 지난 2008년 10월부터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푸른빛 학교에서 중학교 과정 야학교사로 일하고 있다. 무료 봉사지만 지난 3년간 단 한 번도 강의를 빠져본 적이 없다.

그가 이곳에서 강의를 시작한 것은 당시 푸른빛 학교에서 야학교사로 일하던 동료의 권유 때문이었다. 수학은 대부분 인근 성균관대 학생들이 가르쳤는데, 군입대 등으로 자주 결원이 생겨 안정적인 교사 확보가 절실했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고, 학교와 가까운 도청에서 근무하는 그가 수학 교사로는 적임자였다. 그는 흔쾌히 야학교사 일을 맡았다.

그는 "뭐 별다른 사명감도 아니고, 그냥 좋은 일 한 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덤덤히 말했다. 야학에서 그가 처음 맡은 과목은 수학이 아닌 과학이었다. 첫 수업은 쉽지 않았다. 과학은 1개 과목처럼 보이지만 지구과학, 일반과학, 물리, 화학 등 다양한 분야가 섞여 있어 외워야 할 내용도 많았다. 특히 지구과학은 화강암·편마암 등 암석의 종류와 특징을 외우느라 며칠밤을 새워야 했다. 그는 "첫 수업을 위해 1주일 전부터 하루 7~8시간씩 참고서와 인터넷을 뒤지며 준비를 했는데 너무 긴장해 잠까지 설쳤다"며 "태양계 행성에 대해 설명하는 수업이었는데 5명의 학생들이 우주에 관한 내용에 신기해 하며 집중하는 모습에 짜릿한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2개월 뒤부터는 과학과 수학을 함께 맡아 일주일에 4시간씩 강의를 했다. 그러나 직장 일과 수업을 병행하기가 힘들어 6개월째부터는 일주일에 두 차례 수학만 담당하고 있다. 수업에 투자하는 시간이 많고 귀가가 늦어지면서 가족들은 처음에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지금은 그의 든든한 후원자다.

현재 4명의 학생이 있는 푸른빛 학교 야학반은 늦은 나이에 배우고 싶어하는 40~60대 만학도들의 배움터다. 지금까지 30여 명이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기억에 남는 제자도 많다.

그는 "대입 검정고시를 준비한다는 30대 후반 주부가 기초를 다지겠다고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다"며 "이미 고입 검정고시를 합격한 분이라 중학교 과정을 가르치는 수업에서 매번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나를 긴장시키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자신이 가르쳤던 제자들과 명절이나 연말이면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그게 강의를 이어가는 데 큰 힘이자 보람이다.

그는 "가르치기 위해 야학에 오지만 40~60대 학생들과 수업을 하다보니, 오히려 내가 세상 살아가는 이치를 배운다"며 "수업 도중에 시사적인 내용이나 사회적 문제에 대한 토론도 왕왕 벌어진다"고 말했다. 1986년 개교한 푸른빛 학교에서 1994년부터 야학교사를 해오다 교장을 맡고 있는 이휘수(49)씨는 "공 선생님은 8명의 야학교사들 중 가장 나이가 많지만 늘 묵묵히 진심으로 가르치시는 분"이라며 한 번은 충청도로 지방출장을 가셨다고 들었는데 저녁 늦게 야학으로 전화를 걸어 '지금 가고 있으니 기다려달라'고 했을 때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 달 전부터 공씨에게 수학을 배우고 있는 류화주(53·수원시 서둔동)씨는 매일 새벽 4시부터 교회 관리 일을 하고 있다. 류씨는 "힘든 생활 속에서도 야학에 나와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늘 감사한다"며 "이해할 때까지 자상하게 가르쳐주는 공 선생님 덕분에 편안한 마음으로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용인 한국민속촌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가옥관리를 하는 김명자씨도 "고된 일을 마치고 나면 하루쯤 야학을 빠지고 싶다가도 아무 대가없이 열심히 가르치는 공 선생님이 떠올라 교실로 오게 된다"며 "남들처럼 배우지 못해 쌓인 한을 이곳에서 풀게 돼 항상 고맙다"고 말했다. 공씨는 "새해에는 야학에 학생들이 많이 와 푸른빛 학교가 예전처럼 활기를 띠면 좋겠다"며 "여건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이곳에서 학생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