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구석 디자이너의 손길 닿은… 여기는 어린이집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개 고만고만하다. 빨강, 파랑 같은 알록달록한 색깔, '동화 속 궁전'처럼 귀여움을 강조한 장식들…. 아이를 어디에 보낼지 고민하는 부모들은 대부분 비슷한 결론에 이른다. "다 거기가 거기지 뭐."

'디자인'의 손을 빌려 이런 보육시설들에 대한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어린이집이 등장했다. 게임업체 넥슨이 사원들을 위해 마련한 어린이집 '도토리 소풍'이다. 유명 디자이너를 통해 구석구석까지 꼼꼼하게 챙겨 화제가 되고 있다. 보육시설을 마련하기 위해 이를 벤치마킹하는 회사가 생겨날 정도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고 한다. 1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이 어린이집을 찾았다.

"아이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여기서 보내요. 화려하고 특별한 공간을 만들기보다는 또 다른 집처럼 편안한 느낌이 들게하고 싶었어요." 디자인을 담당한 최희영(보이드플래닝 소장)씨의 설명이다. 최 소장은 최근 세계적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 설계한 빌딩의 찻집 디자인을 맡는 등 국제적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공간 디자이너다. 그는 "어린이집은 겉모습부터 예쁘고 아기자기해야 한다는 생각은 고정관념"이라며 "직선과 회색을 써서 외관은 되도록 차분하게 했다"고 했다.

실내에서도 아이들을 배려한 디자인이 눈에 띈다. 먼저 층별로 주제색을 정했다. 1층은 노란색, 2층은 분홍색, 3층은 하늘색. 2층 교실 문에 분홍색보다 좀 더 짙은 주황색을 쓰거나, 3층 복도 천장에 구름이 흘러가는 하늘 모습을 넣는 등 주제색을 바탕으로 조금씩 변화를 줬다. "강렬한 원색보다는 색조가 조금씩 다른 다양한 색을 써서 아이들의 색감이나 창의력을 자극하고자 했다"는 설명이다.

조명에도 신경을 썼다. 돌이 안 지난 아이들 방 천장에는 공처럼 둥근 전등을 여러 개 달았다. 최 소장은 "누워 있는 시간이 많은 아기들이라서 천장에 재미있는 형태를 넣어준 것"이라고 했다. 4층의 놀이방에는 따뜻한 느낌을 주는 간접 조명을 사용했다.

놀이터로 쓰는 옥상에는 작은 텃밭이 있다. 박이선 넥슨 사회공헌실장은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자연을 느끼게 하기 위한 것"이라며 "여름에는 선생님들과 함께 상추나 토마토 같은 채소를 길러서 먹는다"고 했다.

자녀가 있는 직원들의 조언을 디자인에 반영했다. "아이들은 좁은 공간에 들어가거나 숨는 걸 좋아한다" "아이들이 혼자서 문을 열고 닫다 보면 손을 다칠 수도 있다" 같은 의견들이다. 그 결과 계단 뒤의 작은 자투리 공간은 블록 놀이방이 됐다. 아이들이 스스로 사용하는 4∼5세 반 교실 사물함은 하나하나 문을 달아주려던 계획을 바꿔 문 없는 모양으로 디자인했다.

어린이 디자인교육 전문가 유성자 씨알드림 소장은 "보육 시설의 공간이나 색상, 구비 물품 등이 집과 너무 차이 나면 어린이들이 적응을 잘 못하는 경우가 있다"며 "자연스럽게 디자인된 공간은 집과의 괴리감이 덜해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