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판매량 늘었지만… 통조림 등 대부분 실속형

19일 오전 경기도 여주의 이마트 물류센터. 연면적 7만5500㎡(2만3000평) 규모로 1시간에 3만6000상자를 처리하는 이곳에선 막바지 설 선물세트 배송 작업이 한창이었다. 직원들은 컨베이어 벨트에서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상자들을 비닐로 묶어 수도권과 강원도 지역 매장으로 가는 화물차에 옮겨 싣느라 정신이 없었다.

불황 속 명절을 맞은 소비자들의 지갑 사정은 물류센터 컨베이어 벨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치약·샴푸·비누 등 생활용품 선물이 담긴 상자가 끊임없이 배송차에 실리는 동안, 최근 가격이 많이 오른 사과 등 과일세트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5만원 미만의 통조림 선물세트가 담긴 상자도 어른 키보다 높이 쌓여 배송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물세트를 옮기던 정성진(42)씨는 "요즘 경기가 안 좋다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며 "이번 설에는 10만원 이상 고급 선물 물량이 예년보다 20~30%는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화물 배송 업체 직원 윤기상(29)씨도 "샴푸 선물세트만 해도 4개 이상 포장된 고급 세트 대신 1만5000원짜리 안팎의 저가 제품 물량이 트럭을 가득 채우고 있다"고 말했다.

설을 앞두고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를 찾는 소비자들은 실속형 선물로 장바구니를 채우고 있다. 롯데백화점에서 13만~14만원대 알뜰 한우 세트 매출은 작년보다 70%나 늘었고, 와인은 5만원 이하의 선물 물량이 작년 설보다 2.5배 증가했다. 이마트에서는 전체 한우 선물 매출 중 10만원 이하 저가 세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14.8%에서 올해 32.8%로 뛰었다. 통조림이나 조미료 등 가공식품 선물세트는 전체 매출의 65%가 3만원 이하 제품이었다.

올해 유통 업계의 설 선물 판매 실적의 특징은 매출 증가율보다 판매량 증가율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현대백화점은 12월 말부터 1월 중순까지 선물세트 매출이 5.2% 증가했지만, 판매량은 10%나 늘었다. 택배 업계도 올해 취급 물량이 작년보다 많이 늘었다. 한 택배 업체 관계자는 "경기가 안 좋을수록 저가 상품을 여러 곳에 보내는 경향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990년대에 유행하던 양말이 선물로 인기를 끄는 것도 경기 둔화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온라인 쇼핑몰 G마켓에서는 최근 1주일 동안 양말 선물세트 매출이 작년 설 연휴 전 같은 기간보다 54%나 늘었다. 양말 생산·유통 업체 비엔에이는 올해 설 선물세트를 준비하면서 3000~4000원짜리 제품 물량을 예년보다 10% 정도 늘렸다. 이 회사 김창식(57) 사장은 "설 선물로 만들어놓은 양말 15만 세트 중 90% 정도는 팔 수 있을 것 같다"며 "최근 경기가 안 좋아 소비자들이 저렴한 선물을 많이 찾을 것이라고 예측한 것이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농수산물을 주로 취급하는 시장 상인들은 "올해 설은 '대목'이라는 말을 쓰기 민망하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관계자는 "설이 코앞에 닥쳤는데 과일이나 생선 등 제사용품 취급 물량이 예년보다 줄었다"며 "일부 도매상, 중매인은 일찌감치 일을 접고 휴가에 들어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과일 도매업체를 운영하는 이봉의(67)씨는 "요즘 서울 시내에서 과일 가게 찾아보기가 어렵지 않으냐"며 "인터넷 쇼핑몰과 대형 유통 업체에 손님을 빼앗긴 영세 상인들은 설 분위기를 느끼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