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잃은 스팩(기업인수목적회사)… 인수 성공률 10%

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SPAC)인 신한제1호스팩은 이달 초 자동차 부품업체인 서진오토모티브와의 합병 일정이 연기됐다고 밝혔다. 당초 신한제1호스팩은 지난 6일 주주총회를 열어 두 회사의 합병을 승인하고 다음 달 10일자로 합병하려고 했다. 그러나 신한제1호스팩의 대주주인 동부자산운용과 KTB자산운용이 합병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돌연 주주총회가 취소됐다. 한국거래소의 합병 상장 예비 심사를 통과하고도 주주의 반대에 부딪혀 스팩의 유일한 설립 목적인 '합병'이 무산될 위기에 처한 셈이다.

지난 2010년 처음 등장한 스팩이 갈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2010년부터 증시에 상장된 22개 스팩 중 현재까지(19일 기준) 합병에 성공한 스팩은 단 두 건(알톤스포츠, 화신정공). 이마저도 합병 대상 기업의 이름으로 변경 상장된 후 주가가 하락해 투자자들은 손실을 보고 있다.

◇대부분 주가 공모가보다 낮아

스팩은 기업 인수·합병(M&A)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서류상의 회사다. 상장 후 주로 비상장 기업을 합병해 수익을 내도록 만들어졌다. 합병 대상 기업이 스팩과 합병해 증시에 상장된 후 주가가 오르면 스팩 투자자들은 합병 기업의 주식을 팔아 수익을 낼 수 있다.

그러나 지난해 8월 스팩과 합병을 통해 각각 증시에 입성한 알톤스포츠와 화신정공의 주가는 상장 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에이치엠씨(HMC)아이비제1호스팩과 합병한 자동차 부품업체 화신정공의 주가는 상장일 시초가 대비 32.5% 하락했다. 신영해피투모로우스팩과 합병한 자전거 제조업체 알톤스포츠의 주가는 상장일 시초가 대비 18.8% 내려간 상태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에이치엠씨(HMC)아이비제1호스팩과 신영해피투모로우스팩은 그나마 합병이라는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에 스팩의 성공 사례처럼 보이지만 합병 후 주가가 하락세임을 감안하면 완전히 성공했다고도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아직 합병을 하지 못한 대부분의 스팩주도 공모가 아래에서 거래되고 있다. 20개 스팩 중 이트레이드1호스팩을 제외한 19개 스팩의 주가는 모두 공모가 대비 4~7%가량 하락했다. 카메라 모듈 검사장비 제조사인 하이비젼시스템과 합병 상장을 앞둔 이트레이드1호스팩의 주가가 공모가 대비 55% 오른 정도가 그나마 성공 사례다.

일부 스팩은 거래량도 극히 적다. 부국퓨쳐스타즈스팩은 올해 들어 거래량이 전혀 없거나 단 1주인 날이 14거래일 중 6일에 달했다.

◇합병 문턱 높아

모든 스팩이 두 손 놓은 것은 아니다. 20개 중 절반에 달하는 스팩이 적어도 한 번씩은 다른 기업과 합병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 중 상당수는 한국거래소의합병 상장 예비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거나 주주총회에서 반대의 벽에 부딪혔다.

키움제1호스팩과 에스비아이앤솔로몬드림스팩은 지난달 23일 한국거래소로부터 합병 심사 미승인 통보를 받았다. 두 스팩 모두 제약업체와의 합병을 추진했으나, 오는 4월부터 시행되는 약값 인하 등으로 인해 제약업종의 전망이 불확실해 퇴짜를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지난해 7월 부국퓨쳐스타즈스팩은 유선통신장비 제조업체인 프롬투정보통신과 합병하려다 한국거래소의 승인을 받지 못했고 하이제1호스팩은 신재생에너지 기업인 엠에너지와의 합병 심사에서 고배를 마셨다. 대신증권그로쓰알파스팩은 한국거래소의 합병 심사에서는 합격 통지를 받았으나 주주총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경우다.

스팩은 3년 내에 합병하지 못할 경우 자진 해산해야 하기 때문에 지난 2010년 초에 상장된 스팩들은 앞으로 1년 내에 합병할 짝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