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Interview] 푸드 슬라이서 업체 요시이즈미社 사사키 사장

각종 식자재를 먹기 좋은 상태로 절단하는 푸드 슬라이서(food slicer) 전문 제작업체인 요시이즈미산업주식회사(吉泉産業株式會社)는 오사카 북동부 외곽 지역인 히라카타시(枚方市)에 자리 잡고 있다. 규모로만 따졌을 땐 직원 60명에 연 매출 약 14억엔(약 210억원)에 불과한 지방 중소기업이다.

하지만 요시이즈미는 푸드 슬라이서라는 특수 분야에서 업계 점유율 40%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이다. 기계 부품 등을 대부분 외부에서 아웃소싱하는 다른 푸드 슬라이서 업체와 달리 요시이즈미는 기계에 들어가는 부품을 80% 이상 자체 제작한다. 공장부지(6330㎡) 가운데 3분의 2에 해당되는 3890㎡가 부품을 만드는 제조공장이다.

지난해 극심한 일본 경기 불황 속에서 2010년에 비해 연 매출이 10% 증가하는 등 1988년 주식회사로 등록한 이래 지금까지 큰 부침(浮沈) 없이 꾸준히 성장세를 이어온 점도 주목할 만하다. 식품가공업체와 유통업체 위주인 거래처도 1000여곳이 넘는다. 최근엔 국내 삼성전자 구내식당에까지 슬라이서를 납품하기도 했다. 2008년 오사카부(府)가 선정한 우량 제조 기업에, 2009년 경제산업성(省) 중소기업청이 선정한 '건강한 물건 만들기 중소기업 300사(社)'에 선정되는 등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도 역량을 인정받았다.

요시이즈미의 이러한 성공 비결은 바로 칼날 아래 숨어 있는 첨단 기술력이다. 일반적인 푸드 슬라이서로 생선을 자르면 대형 톱날에 연약한 생선 살점이 짓눌려서 잘린 단면이 비뚤비뚤해지기 일쑤다. 하지만 요시이즈미가 2010년 1월 개발한 생선 절단기는 사람이 직접 자른 것처럼 흐트러짐 없이 반듯반듯하게 생선을 자른다. 한손으로 생선을 잡아당기면서 자르는 '히키기리(引き切り)'라는 기술을 기계에 적용했기 때문이다.

모양뿐 아니라 잘린 생선 무게도 70g으로 모두 같다. 기계 안에 CCD 카메라가 있어서 생선을 기계 위에 올려놓으면 카메라가 생선 살 토막 단면을 촬영하고 내장된 컴퓨터가 그 수치를 입력해 같은 무게로 잘리도록 계산해 준다. 촬영에서 계산까지 걸리는 시간은 0.1초밖에 안 된다.

이 외에도 양배추를 샐러드용으로 얇게 채썰어주는 기계, 당근 같은 단단한 야채를 똑같은 두께로 자르는 기계, 내장을 발라낸 갯장어에서 가시를 발라내 주는 기계도 있다. 갯장어는 500개가 넘는 자잘한 가시 때문에 경험 많은 장인들도 다루기 어려워하는 생선이다.

13일 Weekly BIZ가 오사카 공장에서 사사키 게이에키(佐佐木啓益) 요시이즈미 사장을 만나 섬세한 장인의 손기술을 기계에 구현한 과정을 들었다.

요시이즈미는 1955년 식칼·끌 등 각종 도구의 날이 녹슬지 않도록 열가공처리하는 소규모 가공공장에서부터 출발했다. 사사키 게이에키 사장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창업한 공장에서 도구를 자주 접했지만, 그저 도구를 연마하기만 하는 데선 별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그는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지요. 그 왜 직인(職人·목수나 이발사 등 특정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다루는 기계 같은 거 있잖아요"라고 말했다.

사사키 사장이 제일 처음 만든 푸드 슬라이서는 1960년대 중반 개발한 아주 간단한 자동 파 썰기 기계였다. "요새 장사가 너무 잘 돼 손님들이 계속 몰려오는데 쉴 새 없이 파를 썰자니 너무 힘들어. 무슨 방법이 없을까" 하고 푸념하는 인근 우동집 주인을 위해 개발한 물건이었다.

자동 파 썰기 기계는 예상 외로 히트를 쳤다. 오사카 지역에서만 3000대 가까이 팔려나갈 정도였다. 푸드 슬라이서 회사 요시이즈미로서의 첫출발이었다.

기계에 담긴 장인의 기술
카메라가 0.1초 만에 생선 살토막 단면 촬영
신선도·모양 유지하며 똑같은 무게로 잘라내

◇장인의 기술을 기계에 담다

―요시이즈미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기계를 소개해 준다면?

"지난해에 제작한 기계인데요…. 한국에서도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본에선 요리집에서 회를 내 올 때 무 끄트머리 부분을 둥글게 깎은 것 위에다가 얹어서 손님들에게 제공하거든요. 그런데 무는 밑동 부분이 길쭉하니까 둥글둥글하게 자르기 꽤나 힘이 들어요. 그래서 무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깎아서 둥글둥글하게 만들어주는 기계를 만들었죠. 때로는 그렇게 주문 제작한 물건을 팔 수 있는 시장 자체가 너무 협소해서 1년에 몇 대밖에 안 팔릴 수도 있지만, 그래도 손님의 강한 요망이 있으면 될 수 있는 대로 요구를 다 받아들여서 현실화시키려고 하고 있어요."

―요시이즈미의 푸드 슬라이서는 다른 곳의 제품과 어떻게 차별화되지요?

"예를 들어서 양배추 채썰기 기계는 전부 0.8mm 두께로 얇게 썰어주지요. 균일한 두께로 자르고, 양배추 샐러드처럼 접시에 담았을 때 뭔가 볼륨 있어 보이는 게 하는 느낌이 관건이에요. 생선 슬라이서는 생선을 균일한 크기로 토막 내 줍니다. 1시간에 2800장까지 잘라낼 수 있어요. 또 갯장어 가시 발라내는 기계도 있습니다. 갯장어의 가시를 하나도 남김없이 발라내는 데는 장인의 기술이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기계로 갯장어 가시를 발라내는 것은 요시이즈미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요시이즈미산업의 푸드 슬라이서엔 장인의 기술이 들어가 있다고 하던데요.

"생선을 부서뜨리지 않고 잘라야 하는 게 관건인데 그러려면 식당에서처럼 한손으로 생선을 잡고 당기면서 자르는 '히키기리'를 해야 합니다. 히키기리를 하지 않으면 생선이 부스러지고 육즙이 흘러나와요. 생선 슬라이서는 둥그런 날이 회전해 돌아가면서 히키기리를 하기 때문에 신선도가 유지되고 모양이 균일하게 나옵니다.

또 잉어나 다랑어 등 같은 종류 생선이라도 모양이나 크기가 제각각 다르잖아요? 하지만 기계 안에 있는 CCD카메라로 모양을 촬영하고 컴퓨터로 측정해 생선이 똑같은 무게로 잘리도록 하지요. 생선 살코기 부분이 표면에 잘 나오게 잘리도록 각도를 조절하는 기능도 있습니다. 같은 연어라 하더라도 회전 초밥집에서 쓰는 연어랑 편의점의 연어 덮밥 도시락에 쓰는 연어는 자르는 방법이 다르잖아요. 도시락용은 되도록 첫눈에 잘린 생선 살코기 부분이 널찍하게 보여서 '아, 생선이 제대로 얹혀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게 중요하니까요. 그래서 기계가 생선 속살이 가장 잘 보이도록 각도를 조절하는 거예요."

―종류는 몇 가지인가요?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데…. 그때그때 클라이언트의 주문을 받아들여 만드니까요. 기본형은 40~50가지예요. 그리고 그 외 주문 제작을 해서 만드는 거죠. 주문은 다양하게 들어와요. 브로콜리 썰어주는 기계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도 있었으니까요. 그건 아직 성사되지 못했지만요."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장인의 기술을 기계화한 물건을 만들고 싶어요. 같은 물건들을 그냥 찍어내서 팔고 싶진 않아요.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것을 만들고 싶지요. 그냥 같은 물건을 찍어내듯이 만들고, 다른 데 나온 물건을 베껴서 팔기만 한다면 그건 물건이 아닌 가격 경쟁이 되고 말 뿐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윤을 내고자 하는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형태로, 이런 물건을 만들어 보자' 하는 오리지널리티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단 한명이라도 고객이 원하면 만든다

―지금처럼 맞춤형 제품을 적극 생산하게 된 데는 2001년의 상담 한 건이 계기가 되었다고 들었는데요.

"당시는 중국이나 인건비가 싼 곳에서 저가 기계들이 마구 쏟아져 나와 우리는 비용 측에서 경쟁성이 떨어지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수퍼마켓의 한 식품 담당이 와서 '생선을 사람 손으로 하듯이 똑같은 모양으로 부서지지 않게 잘라주는 기계가 없을까' 상담을 해서 그걸 한번 만들어 보기로 했지요.

같은 생선이라도 잉어냐 다랑어냐에 따라서도 전부 다루는 방법이 다르고, 먹는 방법도 다르잖아요. 그런 세세한 요구를 일반 푸드 슬라이서로서 맞추긴 어렵지요. 그런 자잘한 요구에 대응하는 것이 활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제품이 완성된 것은 의뢰를 받은 지 8년 만이었다면서요. 돈도 상당히 들었을 텐데?

"그렇지요. 결과가 안 나와도 인건비는 들어가는 것이니까."

―왜 중간에 그만두지 않았나요?

"수요가 있었으니까요. 필요로 하는 손님이 존재하니까 그만둘 수가 없는 거죠. 또 모노즈쿠리(정성을 다해 물건을 제조하는 것) 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기계 몇대가 팔렸다든지, 연 매출이 얼마라든지 하는 숫자로만 계산되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물건은 꼭 만들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다거나, 고객들로부터 '이런 물건은 반드시 만들어 주세요'라는 부탁을 들으면 1년에 3대가 팔리든 4대가 팔리든 제품을 만들지요. 단순히 팔리는 것만, 손익만 계산해선 한 걸음 앞서 나갈 수가 없습니다."

―한국에도 2009년 인천에 지사를 냈는데, 이유는 뭔가요?

"한국 고객들이 3건인가, 4건인가 '이런 걸 만들어 주세요'라고 한 게 있었어요. 우린 고객들 상담을 받아 설계를 개발하고 부품을 만들고 직접 세일즈를 하지요. 고객들의 세세한 요구를 하나씩 받아들이려면 그냥 여기서 들어서는 만들기 힘들잖아요. 그래서 그 참에 한국에도 지사를 만들기로 한 거지요. 아직 수요가 적어서 '지금부터'라고 생각하는 단계이긴 하지만요."

틈새시장 파고들기
갯장어 가시 바르고 양배추 채써는 기계…
단 한명의 고객 있다면 그들의 요구대로 만들어 점유율 100%인 셈

◇틈새시장을 정확히 파악하라

―푸드 슬라이서가 틈새시장이 될 거라고 어떻게 예상하셨나요?

"예전과 달리 점차 패밀리레스토랑이 생기고, 수퍼가 생기고…. 수퍼가 생기니까 식재료도 다양한 소재를 취급하게 되잖아요. 가정에서 조리를 하는 시간도 적어지고. 조리를 한다 하더라도 그 반(半)제품이라고 하나요? 식재료가 다 잘려져 있고 집에 와서 데우기만 하는 제품이 늘었잖아요. 또 식재료는 분야가 넓어요. 같은 식재료라 하더라도 종류와 크기도 다양하지요. 처리 과정도 길고 복잡해요. 수퍼에서 생선을 잡아서 그냥 통째로 내놓고 '자, 드세요' 이럴 순 없잖아요? 머리를 잘라내고, 내장을 빼내고, 비늘을 벗기고…. 그걸 전부 처리해 주는 데가 필요하지요. 그래서 처음부터 니치마켓이라고 생각했어요. 식생활의 형태가 먹기 직전까지 제품이 다 만들어져서 나오는 식으로 변화하니까 그 상황에서 생기는 필요에 대응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틈새시장을 노린 이유는 뭔가요?

"틈새라고 할 수 없는 커다란 시장은 경쟁이 너무 심해요. 그런 곳에서 우리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없을까 자신이 없었죠. 한국의 삼성처럼 휴대전화 같은 엄청난 물건을 만들면서 사세가 커지는 건 우리한테 맞지 않는다고나 할까, 아니 할 수 없는 부분이지요. 대신 우린 고객들이 3명, 4명이 있어도 주문을 받아 만들 수 있습니다. 물론 코스트는 커요. 그래도 대신 직접적으로 맞춤 제작을 하니 돌아오는 부분도 큽니다. 우리 같은 중소기업으로선 그런 작은 틈새를 찾아내는 게 중요해요."

―요시이즈미가 고객의 자잘한 요구를 다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중소기업이라서 가능했던 거지요?

"그렇지요. 이런 노력들이 매스컴 같은 데 소개돼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는 회사네' 하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우리는 '그냥 보통 기업인데'하고 생각하지만."

―중소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선 뭐가 필요한가요?

"헝그리 정신이라고나 할까요. '어떻게 해서든 이런 물건을 만들어서 팔고 싶어' 하는 정신. 요즘은 한국이 일본 기업을 점점 이기고 있지 않나요? '1등이 될 거야' 하는 정신이 느껴지거든요. 그런데 요즘 일본 젊은이들에겐 성취하려는 의욕이 없어요. '왜 일본이 넘버 원이 못 되는 거야!'라고 해도 '넘버2나 3라도 상관없어요' 하지요. 하지만 아주 좁은 분야라도 거기서 넘버원이 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해 봅시다' 하는 스피릿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중소기업으로서는."

―업계에서의 점유율이 40% 넘는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업계의 점유율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아요. 고객들에게서 '이런 물건을 만들어 주세요'라는 말을 들으면 그걸 만들고, 고객들과 1대1로 접해서 그들 요구대로 물건을 만들어 파니까, 그런 면에선 점유율이 100%라고 생각해요."

―요시이즈미의 향후 목표는?

"거대 프로 야구보다는 고시엔(甲子園·일본의 고교야구 대회)처럼 작지만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기업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