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세월' 잡으려 다시 무대에 선다

어떤 이는 그를 '라디오 교통프로 진행자'로 기억하고, 어떤 이는 '모창(模唱)을 자주 당하는 가수'로 그를 떠올린다. 1960~70년대 통기타 군단의 한 축으로서 젊은이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서유석(67)에 대한 이미지는 이렇듯 '기타 치고 노래 부르는' 본래 모습에서 조금 벗어난 듯한 느낌이다.

그런데 올해에는 '가수 서유석'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을 듯하다. 27일(현지시각)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교민들을 위한 콘서트를 열고, 3월부터는 데뷔 후 40여년 만에 첫 전국투어 콘서트를 연다니 말이다. 1989년 독도를 주제로 한 노래인 '홀로 아리랑' 이후 23년 만에 새 앨범도 낸다고 한다.

브라질 출국을 나흘 앞둔 지난 18일 서울 광화문에서 서유석을 만났다. 그는 "올해는 가수로 본격 컴백하는 해다. 젊은 시절 노래할 때처럼 가슴이 두근두근 뛴다"고 했다.

서유석은 일찌감치 전국투어 콘서트 타이틀까지 정했다. '어느 95세 청년의 이야기'. "작년에 우연히 집어들었던 천주교 문예지의 글에서 힌트를 얻었어요. 95세 어르신이 생신날 외출하려고 거울을 봤는데,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는 거야. 돋보기도 안 썼고 의치·보청기도 없을 정도로 건강한데 은퇴할 나이가 되니 으레 노인이라고 생각해 30년 동안 '노인 연습'만 하고 아무것도 못하고 허송세월했다는 거지. 그래서 10년 뒤에는 절대 후회하지 말자며 바로 영어학원에 등록했대요. 난 그 글 덕에 '은퇴는 끝이 아니다'라는 걸 그분보다 30년 일찍 알았으니 횡재한 거 아닙니까. 또래 분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어요. 우린 아직 창창하다는 걸!"

이 콘서트는 상반기 동안 서울·부산·대구·광주·대전·창원 등에서 열릴 예정. 그는 앞서 2003년에 디너쇼를 치렀지만 아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준비가 미숙해 분위기가 어수선했죠. 나는 나대로 무대에서 진땀을 뻘뻘 흘렸고요. 그때 오셨던 팬들께 참으로 미안했습니다. 역시 공연은 음악 자체로만 순수하게 보여줘야 할 것 같아요. 이번엔 그렇게 진행될 겁니다. 사실상 제 음악인생의 첫 공연입니다."

27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대한가수협회 브라질지부 주최로 여는 단독 콘서트는 '어느 95세 청년의 이야기'의 전초전 성격이다. 그는 통기타와 건반만 들어선 단출한 무대에서 '타박네야' '홀로 아리랑' '가는 세월' '아름다운 사람' 등의 히트곡들과 캠프송들,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노래들을 들려줄 예정이다. "작년 (비스트·포미닛·지나 등) 아이돌 가수들이 공연한 도시잖아요. 현지 사람들한텐 한류가 필요하겠지만, 이곳에서 갖은 고생하면서 터전을 일군 교민들에겐 내가 더 반갑겠죠."(웃음)

'가는 세월' '아름다운 사람' 등 대표곡 때문에 잔잔한 포크 가수 이미지가 강하지만, 그의 음악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1970년대 YWCA의 노래모임 청개구리에서 활동하며 사회성 짙은 노래들을 발표했다가 판매금지 등의 곤욕을 치렀고, 라디오 DJ시절 박정희 대통령을 비꼬았다가 방송국 간부가 군 사령부에 끌려갔다고도 한다. 그는 "고생도 많았지만, 노래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어 행복했다"며 "사람마음 모으는 데는 노래가 최선이다"라고 했다.

새 앨범은 "히트곡 리메이크와 과거 앨범에 발표했으나 알려지지 않았던 노래들, 신곡 등을 두루 담을 생각"이라고 했다. "아직 완성되진 않았지만, 신곡 '어느 95세 청년의 이야기'를 앨범 타이틀로 정했다"고도 했다. "노래로 많은 돈을 번 것도 아니고 굴곡도 더러 있었지만, 내 노래로 사람들 마음에 따뜻한 울림을 줬으니 참 행복한 인생이었죠. 어른이 된 두 아이에게도 평생 불러온 노래들을 들려주며 '아빠가 이렇게 살아왔다'고 자랑스레 얘기합니다. 이제 제 행복을 동년배들과 나누고 싶어요. 이제 겨우 60 넘겼는데 앞날도 창창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