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동네 의사 송태호의 진료일기] 주량 제대로 실토하는 '알코올성 간염환자' 한 명도 없더라

얼마 전 '거짓말의 발명'이란 코믹영화를 보게 되었다. 국내 미개봉인 영국 영화로, 거짓말이 없는 사회에서 유일하게 거짓말을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뤘다.

이 사회에서는 첫 데이트에 나선 여자가 남자에게 "당신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고 회사원이 상사 면전에서 "재수없다"고 말한다. 이웃에게 "오늘 밤 자살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등장한다. 의사는 환자에게 "오늘을 넘기기 힘들다"고 바로 말해버린다. 그러나 주인공은 온통 거짓말투성이다. 음주단속에 걸렸는데 "술 마시지 않았다"고 하면 무사통과된다. 통장에 한 푼도 없지만 "잔고가 있으니 인출해달라"고 하면 은행에서 돈을 준다.

가식과 허례가 만연한 현대 사회를 통렬히 비판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환자나 의사나 만만치 않은 거짓말쟁이들이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개인 사정으로 휴진하면서도 꼭 세미나 참석이나 강의 때문이라고 한다. 내시경으로 확연한 악성 종양을 발견해도 "조직검사 전까진 알 수 없다"고 선의의 거짓말도 한다.

초등학생들이 병원에 오면 무조건 "아프지 않다"고 우긴다. 아프다고 했다가 주사 맞을까 봐 무섭기 때문이다. 아프지 않아도 아프다고 우기는 경우도 있다. 한 남자 고등학생이 평일 오전에 진료를 받으러 와서 온 몸과 목이 아프다고 했다. 진찰해보니 열도 없고 목도 정상이었다. "특별한 치료가 필요없다"고 했더니 그래도 처방전을 달란다. 처방전을 학교에 내야 한다며 조르는 모습을 보며 이럴 때 의사는 어찌해야 하는지 고민이 됐다. 결국 처방전 대신 진료확인서만 써주었다(아마도 그냥 보내면 이 학생은 처방전을 받으러 근처 병원 순례를 할 것이다). 이런 꾀병 환자는 의외로 많아서, 대학생 또는 직장인 중에도 있다.

환자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당뇨환자들은 정기 진료 때 혈당을 측정하고 이를 토대로 의사와 몸 관리를 상의하는데, 어떤 환자들은 평소에는 식이요법을 전혀 하지 않다가 내원일이 가까워지면 비로소 식이요법을 한다. 병원에 올 땐 아무것도 먹지 않고 와서 혈당을 잰다. 그래도 혈당치가 높게 나오면 "식후 혈당"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약 먹기를 게을리한 고혈압 환자의 경우 "최근 무리하게 일을 했다"거나 "음식을 짜게 먹었다"고 말한다.

환자 세계에서 최고의 거짓말쟁이는 알코올성 간염환자다. 자신의 주량을 그대로 실토하는 환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꼭 환자 가족의 진술이 필요한데, 가족은 또 환자의 주량을 늘려서 말하려는 경향이 있다. 의사는 두 거짓말 사이에서 적절히 알아들어야 한다.

당화(糖化)혈색소 검사나 24시간 혈압 측정기는 환자가 하는 말의 진실 여부를 판단할 때 도움을 준다. 그러나 진찰결과만큼이나 환자의 말에 귀기울여야 하는 의사로서는 환자가 "나는 건강하다"는 식으로 거짓말을 하면 황당하다. 얼마 전 신문에서 음성을 분석해 거짓말 가능성을 탐지하는 컴퓨터 프로그램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앞으로 진료실에서 필요한 검사장비 목록에 거짓말탐지기가 추가돼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