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집 애들은 평생 못 입어봐"… 한복 880벌 기부

"한복은 처음 입어봐요. 너무 예뻐요. 저 예쁘죠?"

이정미(가명·10)양은 설 연휴인 지난 22일 "텔레비전에 나오는 친구들처럼 한복을 입으니까 진짜로 설날 같다. 신난다"고 말했다. 정미는 고아다. 정미는 이날 서울 용산에 있는 저소득층 아동보육시설인 영락보린원에서 친구 70여명과 한데 모여 앉아 한복 입는 법을 배웠다.

보육교사들이 한 명 한 명 새 한복을 입혀줄 때마다 아이들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한복을 다 입은 아이들은 교사들의 지도에 따라 큰 소리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소리치며 세배 연습을 했다. 색동저고리에 족두리까지 갖춰 입은 모습이 서로 신기한지 이곳저곳 신나게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영락보린원의 아이들 대부분은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더욱 외롭고 쓸쓸하다. 정미처럼 부모가 아예 없거나, 부모가 있더라도 경제 사정이 어려워 이곳에 맡겨놓은 후 거의 찾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설날 한복을 선물한 사람은 서울 광장시장에서 어린이한복 전문점을 경영하는 김형철(43)씨다. 김씨는 설에 외롭고 어려운 어린이들에게 전해달라며 지난 19일 자신의 가게에서 만든 5만~6만원대의 한복 880벌을 영락보린원에 기부했다. 김씨는 "영락보린원이 전국에 있는 저소득층 아동보육시설 30여곳과 다문화가정센터 등에 한복을 보내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병삼(50) 영락보린원 원장은 "보린원에 있는 아이들 대부분이 처음 한복을 입어보는 것"이라며 "설날에 상상하지도 않았던 특별하고 뜻깊은 선물을 받았다"고 했다.

부모님이 하던 한복 가게를 물려받아 15년째 운영 중인 김씨는 "아이들이 한복을 입을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요즘에는 한복 가게들도 중국 공장에서 만든 것을 수입해 파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김씨는 "해외로 입양될 아이들을 잠시 맡아 기르는 위탁모들이 아이들을 떠나보낼 때 꼭 같이 보내는 것이 한복"이라며 "한복은 이렇게 우리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증표인데 아이들이 입거나 접하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기부한 한복 880벌은 모두 김씨가 원단을 골라 만든 것들이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어림잡아 4500만원이 넘는다.

"어려운 가정의 아이나 고아는 평생에 한 번도 한복을 입어보기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부하기로 했어요. 한복을 포함해 우리의 여러 전통과 문화를 물려줄 방법에 관해 많은 사람이 함께 고민해 봤으면 해요."

김씨는 "신문에 얼굴이 나올 만큼 잘한 일이 없다"면서 사진 촬영을 한사코 사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