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국 머리 이고 갈비 손에 들고 아들·딸 찾아 고시촌 가는 부모들

"우리 아들이 공부한다는 ○○고시원이 어딘가?"

지난 21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 앞 정류장에서 두 손 가득 짐을 든 50대 여성 4명이 버스를 내렸다. 설날에도 공부하는 자식들을 위해 고향에서 음식을 싸들고 온 어머니들이었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아들을 보기 위해 대전에서 버스를 타고 올라온 김모(53)씨는 "그래도 설날인데 우리 아들이 좋아하는 갈비랑 떡국을 싸왔다"며 "얼른 집에 가서 청소도 해 주고 음식도 해놔야 한다"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서울 신림동과 노량진 고시촌에서 고시나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는 수험생들은 설날을 잊고 지내기 일쑤다. 올해는 54회 사법시험과 5급 공무원을 선발하는 행정고시 1차 시험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7급과 9급 공무원 채용 시험도 4월 초에 예정돼 있다. 다급한 수험생들에게 설날 귀향은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다.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이모(27)씨는 "1차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아서 올해도 고향에 내려가기 어려울 것 같다"며 "2009년부터 공부를 시작했는데 설날이 돼도 항상 독서실에 남아 공부했다"고 말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고시생들의 형편은 대부분 이씨와 마찬가지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설 연휴 때면 자식들을 보러 고시촌으로 올라오는 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다. 명절에도 서울에 남아 혼자 공부하는 자식들을 위해 명절 음식을 싸들고 상경하는 것이다. '고시 역귀성'인 셈이다.

사법시험을 준비 중인 한정원(여·25)씨는 이번 설을 고시촌 원룸에서 부모님과 함께 보냈다.

부산에 사는 부모가 떡국과 명절 음식을 싸들고 상경했다. 한씨는 "공부하는 딸 때문에 부모님이 명절에 고생하시도록 해서 죄송스럽다"면서 "시험에 빨리 합격해서 내년 설에는 부산 고향집에서 가족들과 명절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한씨의 어머니 이은경(56)씨는 "딸이 공부를 위해 저렇게 고생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며 "그래도 떡국이라도 챙겨 먹여서 마음이 한결 편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