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그 때 문화예술이 살아있었다

서울 최대의 유동인구를 자랑하는 패션과 유행의 거리 명동. 누군가에겐 크리스마스의 즐거운 추억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겐 민주화의 불꽃을 피워낸 장소로 남아있는 곳. 전쟁의 화마가 할퀴고 간 1950~60년대 서울 남산 아래 명동은 문화예술인들이 북적북적 모여 창작욕을 불태우던 공간이었다. 시인과 소설가, 화가와 연극인들이 한 잔의 커피와 함께 예술을 논하고, 술잔을 부딪치며 문학을 얘기했다.

'한국 현대 문화예술의 메카' 명동 반세기를 돌아보는 특별전 '명동 이야기'가 서울역사박물관(관장 강홍빈)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 형식부터 독특하다. 1950~60년대 명동을 주무대로 문화예술인들과 교유하며 '명동 백작'으로 불렸던 기자 겸 소설가 이봉구(1916~1983)가 관람객들에게 '명동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꾸몄다. 가난 속에서도 꿈과 낭만이 꽃피던 명동의 모습과 그곳에서 열정을 불태우던 사람들의 발자취를 만날 수 있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아스라이 노래 한 자락이 흘러나온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1956년 명동의 선술집 '경상도집'에서 흥에 취해 시상이 떠오른 박인환이 시를 읊고 옆에 있던 작곡가 이진섭이 곡을 붙인 '세월이 가면'. 그 자리에 있던 임만섭이 노래를 불러 즉석에서 명동 샹송이 탄생했다.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6·25 전쟁 이후 이렇다 할 문화예술 시설이 부족한 상황에서 명동의 다방과 주점은 종합예술의 산실이었다. 예술가들은 다방에 앉아 토론을 하고, 출판기념회를 열며 작품세계를 펼쳤다. 모나리자에는 이중섭·백영수 같은 화가들이, 동방문화회관에는 시인 박인환과 김수영이 들락거렸다. 오상순을 중심으로 가톨릭 계열 문인들이 모여들던 청동다방, 박수근·박항섭 등 서양화가들의 모임터였던 금꿩다방, 연극인들이 단골이던 은하수다방…. 시대별 다방 이름과 단골 예술인들의 계보를 정리한 도표도 시선을 붙잡는다.

국산 위스키 시음장 '포엠'과 명동의 후미진 뒷골목을 그대로 재현한 전시장은 고스란히 그 시대의 명동이 됐다. 전시는 명동 다방, 거리, 술집 곳곳에서 낭만을 노래하던 예술가들의 흔적을 쫓는다. 명동길을 함께 걷는 이봉구, 조병화, 천경자의 모습이 운치 있다.

예술인들의 손때 묻은 물건들과 빛바랜 사진도 볼 수 있다. 백영수 화백이 1953년 모나리자 다방에서 열었던 개인전 방명록, 시인 김수영이 1959년 출간한 시집 '달나라의 장난' 육필원고와 원고 수정본, 연극 '햄릿'의 국내 초연을 맡아 '영원한 햄릿'으로 불렸던 배우 김동원이 당시에 실제로 착용한 무대 의상도 선보인다. 전시는 3월 31일까지. (02)724-0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