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문학상] 참혹한 재난, 그 악취… 부유하는 生, 그 찰나

공교롭게도 강영숙과 김미월은 모두 강원도의 딸들. 각각 춘천과 강릉 출생으로 이번 독회는 문학 외적으로는 '강원도의 힘'을 보여준 계기가 됐다.

심사위원회는 또 박형서의 '핸드메이드 픽션'(문학동네), 배수아의 '서울의 낮은 언덕들'(자음과모음), 전수찬의 장편 '오래된 빛'(문학동네)을 올 2월에 열리는 3차 독회에서 검토하기로 했다.

'2012 동인문학상' 두 번째 독회 통과의 주인공은 강영숙 소설집 '아령하는 밤'(창비)과 김미월 소설집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창비)이 차지했다.

동인상 심사위원회(유종호 김화영 오정희 정과리 신경숙 김동식 김대산)는 지난주 '2012 동인문학상' 심사 독회를 갖고 이 두 작품을 올해 동인문학상 최종심 후보작으로 올렸다. 이로써 최종 후보작은 지난달 독회에서 결정된 정영문 장편 '어떤 작위의 세계'(문학과지성사)와 한강의 장편 '희랍어 시간'(문학동네) 등 4편으로 늘어났다. 동인상 심사 독회는 전년도 8월부터 해당 연도 7월까지 출간된 소설집과 장편을 대상으로 매달 열린다. 심사위원회는 월간 독회를 통과한 후보작 중에서 최종심사 진출작을 고른 뒤 10월에 열리는 수상작 결정 독회에서 2012년도 동인문학상의 주인공을 선정한다.

강영숙(45)의 '아령하는 밤'은 재해의 상상력으로 요약된다. 구제역을 다룬 '문래에서', 원전사고와 도시개발을 다룬 '프리퍄트 창고', 산업재해와 환경오염을 다룬 '아령하는 밤', 홍수 이후 도시풍경을 그린 '라디오와 강' 등 재난소설로 분류될 수 있는 9편의 단편을 모았다. 서울예대 졸업 후 199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작가의 네 번째 소설집. 현대인이 직면한 불확실한 삶과 문명의 폭력성을 일관되게 건조한 문체로 경고하고 있다.

심사위원들은 "치유할 길 없는 재난의 각종 현상들을 실감나게 묘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이고 있다"면서 "특히 이번 책의 단편마다 등장하는 온갖 악취들은 강영숙의 그로테스크한 상상력과 맞물려 강한 인상을 남긴다"고 평가했다. 또 표제작 '아령하는 밤'의 아령하는 노인, '문래에서'의 미술하는 소녀 등의 캐릭터가 보여주는 기이한 '활기'를 언급하면서, 재앙의 한복판에서 각 개인의 내면으로부터 솟아나는 그 불분명한 생기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하지만 그 예술적 활기가 전면에 등장하지 못하고 아직 암시에 그치고 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지적됐다. 한 심사위원은 "강영숙이 그려내는 참혹한 세계는 이제 친숙한 세계가 되었다"면서 "디스토피아적 도시의 이미지를 통해 우리의 불안을 이끌어내는 데까지는 탁월한데, 이제는 우리는 그 이상을 기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미월(35)의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은 무의미하고 무용한 시간의 흐름 속에 어느 순간 반짝이는 생의 찰나에 대한 포착이다. 한 심사위원은 "말이 단편이지 동일한 주제를 집요하게 천착한 연작소설로 봐야 한다"면서 "시작과 끝이 없는 시간의 흐름에 시작과 끝을 부여함으로써 삶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 소설이라면, 이 작가는 한발짝 더 나아가 휩쓸리며 지워지는 한때의 빛나는 순간을 그려낸다"고 평가했다. 29200일(인생 80년)의 어느 하루를 잡아낸 '29200분의 1', 중국인 불법체류자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비정규직 강사의 어느 순간을 그려낸 '중국어 수업', 동백꽃이 자기 그림자를 조준하며 떨어지는 순간을 포착한 '정전의 시간' 등 9편의 단편이다. 심사위원들은 "흘러가는 것에 방점을 찍어주는 힘" "언어와 현실을 아무런 차이 없이 마치 하나로 합쳐놓은 것 같은 문체" 등으로 호평했다. 고려대 언어학과·서울예대를 거쳐 200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전작 '서울 동굴가이드'도 그렇지만, 고시원이나 옥탑방 등 서울의 '동굴'에 대한 공간적 함의를 누구보다 탁월하게 포착하는 젊은 작가로도 꼽힌다. 한 심사위원은 "김미월 소설의 핵심은 집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집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유목민이 될 수밖에 없는 부유하는 존재들, 그들이 보여주는 반짝반짝 빛나는 한순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