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같은 얼굴, 악착같은 연기

그의 말하는 속도는 보통 사람들의 그것보다 두세 배는 빨랐다. 그것도 쉬지 않고 또박또박하게. 인터뷰 질문에 제대로, 많이 대답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혹시 어릴 때 모범생이 아니었냐"는 질문에 고아라(22)는 그제서야 말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18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고아라를 만났다. 최근 개봉한 '페이스메이커'에서 김명민의 상대역인 장대높이뛰기 선수로 출연한 데 이어, 다음 달 2일 선보이는 '파파'에서는 미국에 사는 소녀가장 주인공 역을 연기했다. 다양한 인종의 아이들로 구성된 가정을 지키기 위해 의붓아빠와 갈등을 겪고 화해하며 연예계로 진출하는 '준'역이다.

두 영화 모두 '모범생'인 고아라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영화다. '페이스메이커'에서의 운동선수 연기나, '파파'에서의 춤과 노래에 재능을 보이는 재미(在美) 교포 2세 연기는 준비 없이 나올 수가 없는 것들이다. 그는 "영화 두 편 촬영하면서 하루 15시간씩 운동하고, 영어·노래·춤·기타까지 쉬지 않고 배웠다"며 "영어는 다섯 살 때부터 배운 게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그가 '파파'의 오디션에서 부른 노래는 휘트니 휴스턴의 '그레이티스트 러브 오브 올'(Greatest Love of All).

"연기자가 노래를 부르는 경우, 고음부는 가수가 녹음한 걸 살짝 끼워넣기도 한대요. 한지승 감독님이 '파파'는 진정성과 감동을 얘기하는 영화니까 그런 방법은 쓰지 말자고 하셨어요."

데뷔 10년차인 고아라를 아직도 대중들은 청소년 드라마 '반올림'(KBS)의 '옥림'으로 기억한다. 2003년 SM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가자마자 오디션에 합격해 출연한 데뷔작이다.

그는 "'반올림'이 끝난 후 혼란스러웠다. 성장통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한창 사춘기인 중학생 시절, 3년간 옥림을 연기했어요. 어느 날 그게 끝나버리니까 '내가 옥림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고, 연기를 계속 해야 할지 고민을 하기도 했죠."

고아라는 "중학교 때 친구 따라 기획사 오디션만 안 봤으면 지금쯤 아나운서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아나운서들의 세계를 그린 드라마 '이브의 모든 것'을 초등학교 때 보고 아나운서를 꿈꾸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공부뿐만 아니라 학생회장에 방송반, 기악반 활동까지 뭐든지 악착같이 했다"고 했다. "어떤 인물과 그의 꿈을 잘 표현해내는 일이 저한테는 의미가 커요. 제가 드라마를 보면서 꿈을 꿨던 것처럼 어느 누군가는 제가 연기하는 인물을 보고 다른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되고 꿈을 꿀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반올림' 이후 고아라는 드라마 '눈꽃'(SBS) '누구세요'(MBC) '맨땅에 헤딩'(MBC)에 나왔고, 일본 감독의 영화 두 편에도 출연했다. 꾸준히 연기활동을 해왔지만 그는 연기자보다는 CF나 화보에서의 '인형'같은 모습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페이스메이커'에서 고아라가 맡은 '지원'이란 역할도 실력보다는 외모로 더 유명한 장대높이뛰기 선수다. 그는 "내 경우랑 많이 비교가 됐다. 외모로 사랑을 더 먼저 받게 되고, 작품들도 광고에 가려지게 됐을 때랑 비슷하다"고 했다. 결국 고아라는 이 영화에서 문제의 답을 얻었다. 그는 "가진 것도 없고, 못생긴 주만호(김명민)가 운동장을 달리는 걸 지원이가 담배를 피우면서 쳐다보는 장면이 있다. 지원이는 만호가 달리는 모습에서 자신이 걸어가려고 했던 길을 본다"고 했다. 고아라가 좋아하는 이 장면은 편집에서 잘렸다고 한다.

"만호가 '좋아하는 거랑 잘하는 거랑 뭘 하고 싶냐'는 질문을 던지는데, 그건 제가 배우로서 갖고 있던 고민에 해답을 주기도 했어요. 지원이 운동을 좋아해서 시작한 것처럼, 저 역시 연기가 정말 좋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