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야드 날릴 때마다 300달러씩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파머스 인슈어런스 오픈 개막을 이틀 앞둔 25일, 지난해 이 대회 우승자인 버바 왓슨(34·미국)이 기자회견장에 나와 자신의 드라이버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샤프트와 헤드가 전부 강렬한 핫핑크색이었다. 왓슨은 "핑이 제작한 이 G20 드라이버로 2주 전부터 연습을 해왔으며 올 시즌 내내 이 드라이버를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왓슨이 눈에 확 띄는 색깔의 드라이버로 관심을 끌고자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이날 '버바와 친구들이 100만달러를 만들어간다(Bubba and Friends Drive to a Million)'고 이름 붙인 자선 캠페인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장타자로 널리 알려진 왓슨이 올 시즌 이 '핫핑크 드라이버'로 300야드가 넘는 샷을 날릴 때마다 그의 스폰서를 맡고 있는 골프용품 업체 핑에서 300달러씩 최대 300번까지 암 환자를 돕는 자선 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다. 왓슨은 지난해 300야드가 넘는 티샷을 483번 날렸으며 평균 드라이브샷 거리 314.9야드를 기록했다. 핑은 캠페인 시작을 기념하는 의미로 먼저 1만달러를 기부했다.

왓슨의 의류 스폰서 업체도 동참했다. 왓슨이 메이저 대회에 출전할 때 핫핑크색이 들어간 옷을 입으면 그와 같은 디자인의 옷을 판매해 수익금을 기부하기로 했다. 왓슨은 "나 혼자서는 100만달러를 만들 수 없지만 나의 트위터 친구들과 스폰서들, 전 세계 골프 대회를 다니며 만나는 사람들이 힘을 모으면 큰일을 이룰 수 있다"며 "올 시즌 나에게는 마스터스 대회 우승보다 300야드가 넘는 샷을 몇 번 하느냐, 옷이 몇 벌 팔리느냐가 더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왓슨의 트위터 팔로어는 현재 22만명이 넘는다.

미국 무대 통산 3승을 올린 왓슨은 PGA 투어의 '기부 천사'로 통한다. 2006년 투어에 데뷔하기 전 무명 선수 시절에도 그는 패스트푸드점에서 1달러짜리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값싼 호텔에 묵으면서 2000달러를 모아 대학 여자 골프 대회를 여는 친구를 도와줬다. 이후에도 왓슨은 8년간 꾸준히 같은 대회를 후원했다. 왓슨은 "아내가 프로 농구선수 출신이기 때문에 여성들의 스포츠 환경이 남성에 비해 열악하다는 것을 잘 안다"며 "내가 그 일을 도와야 한다고 느꼈을 뿐"이라고 말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왓슨은 2010년 10월 아버지 제리가 식도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자선 활동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됐다. 미 육군 특전 부대 출신이자 베트남전 참전 용사였던 아버지는 2010년 6월 왓슨이 PGA 투어에서 첫 승을 올린 지 4개월 만에 숨졌다. 여섯 살 때 골프채를 처음 손에 쥐여준 아버지와 이별한 뒤 왓슨은 "골프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며 삶에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는 것을 더욱 절실히 깨달았다"고 했다.

왓슨은 지난해 일본 지진 피해 구호 활동에 5만달러를 기부했고 주니어 골프 대회를 열어 모금한 2만5000달러를 투병 중인 어린이들을 위한 여름 캠프에 후원했다. 아버지가 남긴 유산은 군인들을 돕는 자선 단체에 보냈다.

왓슨은 앞으로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자선 재단은 만들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다. 재단 운영 비용을 아껴 조금이라도 더 기부하겠다는 것이다. 왓슨은 "내가 지금까지 이룬 세 번의 우승을 바탕으로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꾸고 싶다"며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자선 활동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돈과 시간, 노력을 함께 나누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