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폭력 뒤엉킨, 그 시대를 향한 서늘한 시선

"21세기 한국판 '대부(代父)'가 나왔다."

영화 저널리스트 최광희씨는 윤종빈(33)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의 전성시대'(2월 2일 개봉)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윤종빈이 포착한 한국의 '대부'는 기회주의의 극단이다. 폭력마저 착취한 한국 기득권 세력의 일면을 그는 그렇게 본 것이고, 그 시각은 매우 적확하다."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군대를, '비스티 보이즈'에선 호스트바를 각각 다루면서 남자들의 세계를 헤쳐봤던 윤종빈 감독이 이번에는 조직폭력배를 통해 한국사회의 폭력과 권력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는지를 보여주는 문제작을 내놨다. 그는 "'범죄와의 전쟁'은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만든 영화"라고 했지만, 영화에서 사부곡(思父曲)을 기대해선 안 된다. '아버지'의 시대, 그리고 그의 자식들이 살아가는 지금의 시대까지 서늘한 시선으로 비웃는 영화다.

1982년 부산. 해고될 위기에 처한 비리 세관원 최익현(최민식)은 순찰 중 적발한 필로폰을 일본으로 밀수출하기 위해 부산 최대 조직폭력단의 보스 최형배(하정우)와 손을 잡는다. 형배를 등에 업은 익현은 '혈연'을 중심으로 한 인맥을 활용해 부산을 장악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1990년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되자 '나쁜 놈'들끼리 싸우기 시작한다.

25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윤 감독을 만났다.

―왜 부산인가.

"어렸을 때부터 살았던 곳이라 지역 정서를 잘 이해하고 있다. 지역 특유의 '형님' 문화나 '우리가 남이가' 문화를 자주 봐왔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경찰 간부였을 당시엔 사돈의 팔촌까지 다 청탁을 해왔었다"

―80년대 조폭을 택한 이유는.

"어릴 때부터 남성적인 문화,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문화를 싫어했다. 서열 따지고, 상명하복(上命下腹)을 강요하는 문화 말이다. 아버지 세대의 유물 아닌가. 80년대는 군사정권이 독재한 '폭력의 시대'이기도 했고, 아버지 세대가 막 가정을 꾸리면서 사회생활을 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군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울 순 없으니 폭력과 권력을 상징하는 조폭집단을 다루게 된 거다"

―하지만 주인공인 최익현은 조폭처럼 싸우지도 않는 '반달'('민간인'도, '건달'도 아닌 조직원을 일컫는 용어)이다

"조폭이라고 하면 지하세계, 특수세계라는 이미지 때문에 '우리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 필요했다"

―영화에선 아버지에 대한 연민도 느껴지던데.

"맞다. 불쌍하다. 살아남기 위해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세대에 대한 연민이 있다. 지금 와서 '공무원인 아버지의 월급으로 어떻게 그런 생활이 가능했을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 자식이 잘되면 되고, 우리 가족이 잘되면 된다'고 생각하는 가족주의도 한국 사회에 악영향을 많이 끼쳤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나.

"일단 도서관에 가서 당시의 신문을 보고 서울과 부산, 전라도 지역의 조폭들을 직접 만나봤다. (조폭들은) 눈빛부터 남다른 게 무섭긴 하더라. 내 영화 안에서 굳이 꼽자면, 조진웅씨가 그 분위기에 가장 가깝다. '범죄와의 전쟁' 당시 활약한 검사도 만났는데, 실제로 윗선에서 '불구속으로 해주면 예산 특혜를 주겠다' '네가 잡은 조폭은 우리 집안 사람이다' 라는 등의 압박을 많이 줬다고 한다. 영화에는 취재 때 들은 내용이 이것저것 들어가 있다"

―계속 남자들의 세계만 그리고 있다

"싫어하는 것들을 나도 모르게 닮아가고 있다. 영화를 만드는 건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발악하는 거다"

―혹시 여자를 잘 모르는 건 아닌가.

"아무래도 남자를 아는 만큼 잘 알 순 없고, 이해하기도 힘들다. 재작년에 결혼하면서 좀 알겠더라. 여자들에게 쇼핑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남자친구나 남편이 그들에게 어떤 존재인지"(웃음)

―그럼 이제 여자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도 할 수 있나.

"남자배우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은 여자배우를 찾기가 힘들다. 특히 광고나 이미지 때문에 젊은 여배우들이 몸을 사린다"

―영화에서 배우가 중요한가.

"좋은 영화에선 '인간'이 보인다. '아, 인간은 이런 존재지'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내가 표현해 내고자 하는 인간의 모습을 갖고 있는 배우와 작업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