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가 더듬이만 갖고 트럭이 질주하는 도로 위를 무사히 건널수 있을까

여기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있다. 신작로가 깔리고 차들이 다니기 전까지 달팽이가 가진 두 개의 예민한 더듬이는 생존에 충분한 감각기관이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바뀌어 8차선 대로가 뚫리고, 16t 트럭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다. 달팽이는 두 더듬이에만 의존해 길을 무사히 건널 수 있을까?

올해도 어김없이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세계 최대의 전자제품 전시회 CES가 열렸고, 세계 각국에서 15만명 이상이 참석했다. 그런데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제품을 전시하거나 구매하러 온 사람들일까? CES를 주관하는 미국가전업체연합 CEA의 분석에 따르면 참석자의 3분의 1은 제품 전시를 하기 위해 참가한 사람들이며, 3분의 1은 구매를 위한 바이어들, 나머지 3분의 1은 최신 기술과 시장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다. 남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새로운 것들이 나올 것인지를 아는 것은 미래의 전략을 세우는 데 필수적이다.

미국마케팅협회인 AMA 회장을 역임한 와튼 스쿨의 조지 데이(George Day) 교수는 "경쟁에서 이기는 기업은 경쟁자보다 빨리 시장의 중요한 변화를 알아내는 능력에서 다른 기업과 차별화된다"고 말하면서 이 독특한 능력을 '마켓센싱(market sensing) 능력'이라고 불렀다.

필자는 이제 업계를 떠나 있지만, 올해도 라스베이거스 전시장을 방문했다. 학생들에게 좀 더 생생한 강의를 하려면 세상과 기술의 흐름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방문길에 필자는 몇 년 전 뉴욕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당시 중견 전자업체를 경영하던 필자는 뉴욕타임스 기자와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가 물었다. "요즘 당신이 일하는 회사는 무얼 잘하느냐?"

나는 대답하지 않고 거꾸로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이 식당이 왜 잘 된다고 생각해요?" 그는 머뭇거리며 답을 하지 못했다. 뉴욕의 센트럴파크 건너편에 자리 잡은 그 식당은 한 달 전에 전화를 해도 예약하기 어렵다고 소문난 곳이었다. 그는 식사 내내 음식이 맛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음식을 담은 그릇의 디자인까지 칭찬하고 있던 터였다. 나의 이야기는 이렇게 계속되었다.

"조금 전에 우리가 먹은 샐러드의 야채도 참 싱싱하고 쇠고기 타타르도 육질이 참 좋았지요. 하지만 이 식당이 채소와 소를 직접 키웠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 대신 가장 신선하고 맛있는 재료를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겠지요. 한편으로는 요즘 뉴욕 사람들이 어떤 요리 방식과 어느 정도 칼로리의 음식을 좋아할지를 파악하고 있을 겁니다. 게다가 이렇게 조리한 음식을 예쁜 그릇에 담아내니 더 맛있는 것 같네요. 이런 것들이 이 식당의 성공 비결이겠지요."

나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리 회사의 핵심역량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회사도 무슨 대단한 자체 기술을 가지고 있기보다는 지금 이 시간에 어떤 따끈따끈한 기술이 세계 어디에서 나오는지, 또 우리가 원하는 요소 기술과 경쟁력 있는 핵심부품을 어디서 살 수 있는지를 알아내고 구하는 것을 잘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소비자의 취향과 제품의 트렌드가 어떻게 바뀔지를 알기 위해 별도의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지요. 여기에 보태 그런 제품을 소비자가 원하는 디자인에 담아내는 능력, 뭐 이런 것들이 우리의 핵심 경쟁력이 아닐까 합니다."

며칠 후 뉴욕타임스에 필자의 사진과 함께 꽤 큰 기사가 실렸다. 그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당신이 구구절절 판에 박힌 회사 자랑이나 제품의 경쟁력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면 이런 기사는 실리지 않았을 거예요. 당신 회사가 세상 돌아가는 트렌드를 파악하는 능력이 있다고 했는데, 적어도 당신은 기자가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지는 아는 것 같아요."

많은 기업이 달팽이처럼 다가오는 거대한 위협을 파악하지 못한 채 익숙한 작은 더듬이에만 의지해 살아간다. 휴대폰의 절대강자로 군림했던 노키아의 추락도 그 때문이었다. 우리는 늘 자신이 달팽이처럼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