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稅制 개편 키워드는 어닝(earning·소득에 따른 과세)이 아니라 버닝(burning·탄소배출 등 환경오염에 과세)"

대담=이지훈 경제부장

"작년 6월 초 취임하고 나서 첫 90일 중에 60일이나 비가 왔어요. 당장 채소·과일 농사가 안 좋아지니 물가가 걱정이었죠. 게다가 비가 오면 서민들 일자리도 없어집니다. 노점상, 건설 일용직, 야구장에서 음료 파는 아주머니, 캐디, 경마장 행상분들이 갈 데가 없어요. 비가 그칠 만하니 유럽발 재정 위기가 불거졌어요. 이어 가을 정기국회, 연말 예산안을 놓고 정치권과 신경전까지…. 생각해 보니 취임 후 편한 날이 없었네요."

설 연휴 직전인 지난 19일 오전, 본지와 단독 인터뷰를 위해 명동 은행회관 9층 집무실에서 만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취임 후 가장 힘들었던 일 세 가지'를 묻는 말에 너털웃음과 함께 "날씨도 내 편이 아니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복지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증세가 필요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앞으로 세제 개편 키워드는 '어닝(earning)', 즉 소득에 대한 과세가 아니라 '버닝(burning)', 즉 탄소 배출 등 환경오염에 대한 과세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소득층에 대한 소득세율을 더 높이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유럽발 재정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2008년 리먼 쇼크 때와 지금 상황을 비교한다면?

"2008년에는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위기의 규모와 경로를 충분히 파악해 대비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올해 유럽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국채 만기가 집중된다. 글로벌 금융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2009년 발행했던 3년 만기 국고채 상환이 대거 도래한다. 하지만 언제 얼마가 만기가 될지 다 알 수 있다. 당시보다 나쁜 점은 2008년에는 유가가 급락했는데, 요즘 유가는 10개월째 배럴당 100달러를 넘기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란 제재 문제로 유가가 더 올라갈 여지도 있다. 이는 물가에 부담을 주면서 성장률도 낮추는 이중 악재가 될 수 있다."

―1분기에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할 가능성은?

"지금까지 상황으로 보면 그런 극단적인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확률이 어느 정도 될까?

"굳이 얘기하자면 10% 정도다."

―복지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복지 지출의 장기적 방향성이 '증가'인 것은 당연하다. 우리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복지 지출 비중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평균치의 절반 수준이니까. (OECD 평균치는 2007년 기준으로 19.3%인 반면, 한국은 2009년 기준으로 9.6%이다·편집자 주) 하지만 선진국과 비교한 우리 소득수준과 조세 부담률(국민이 낸 전체 세금을 국민소득으로 나눈 것)을 감안하면 낮은 수준은 아니다. 이를 알려주는 계산법이 있다. 우리 소득수준은 OECD 평균의 80%, 또 조세 부담률은 OECD 평균의 70% 정도다. 이를 곱하면 56%가 나온다. 정부 지출을 선진국의 56% 정도 하면 적정하다는 의미다. 이에 비춰보면 OECD의 절반 수준인 우리나라의 GDP 대비 복지 지출 비중은 낮은 수준은 아니다. 소득수준과 조세 부담률이 OECD 평균치에 맞춰 늘어나면 당연히 복지 지출 비중도 OECD 평균치에 수렴해 갈 것이다. 그래야 지속 가능하다."

―포퓰리즘과 친서민의 차이는 무엇인가

"재원 조달 방안이 있는 복지 정책은 친서민이고, 그렇지 못하면 선심성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1년만 따지는 게 아니라 지속적인 재정 지출이 가능한지 따져 봐야 한다."

―세제 개편 논의가 활발한데, 앞으로 화두는 무엇인가?

"세계적으로 세제 개편 추세가 '어닝(earn ing·소득)'이 아닌, '버닝(burning·환경오염)'에 대한 과세로 옮아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버닝이란?

"버닝이란 태운다는 뜻 아닌가. 예컨대 석유를 태우면 탄소가 많이 발생한다. 이것을 줄이기 위해 선진 경제권에서는 탄소세 도입 논의가 활발하다. 현 정부에서 추진할 과제는 아니지만, 중장기 세제 개편은 소득보다는 환경오염을 잣대로 삼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유류세 인하는 어렵다."

―정부가 추진하는 한·중 FTA(자유무역협정)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은데.

“(박 장관은 이 질문에 답할 게 많다며 직접 메모한 내용을 꺼내 들고 약 20분간 쉴 새 없이 말했다.) 한·중 FTA가 한·미 FTA보다 피해가 5배 이상 크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중국은 미국과 달리 농산물 수입 국가이다. 농산물이 부족한데 외국에 수출을 얼마나 많이 하겠는가. 특히 중국산 쇠고기는 한국으로 들어올 일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오히려 우리 친환경 농산물을 중국에 대거 수출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중국의 소득수준이 빠르게 높아져 고급 농산물 수요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 수산물은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한다.

정부가 더 주목하는 것은 일자리 창출 효과다. FTA를 하면 미국, 일본, 유럽 기업들이 한국에다 중국 진출을 위한 전진기지를 만들려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외국 기업의 국내 투자가 늘고, 좋은 일자리도 늘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