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자금, 증시 밀물… 유로 캐리트레이드(금리 낮은 통화 가져다 환차익·금리차익 노리고 외국에 투자)?

유로존 재정위기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지만, 외국인들이 국내 증시에 무섭게 돈을 퍼붓고 있다.

외국인은 지난 20일 하루에만 1조4000억원 어치의 주식을 순매수한 데 이어 25일에도 9000억원을 순매수했다. 2거래일간 순매수 금액이 2조3000억원을 넘은 것은 1998년 외국인 투자한도가 폐지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외국인들은 이번 달 들어 5조원 이상을 순매수했는데, 한달 순매수가 5조원이 넘었던 건 2010년 4월 이후 처음이다. 이같은 매수세에 힘입어 25일 코스피지수는 1952.23으로 마감, 2거래일간 2.0% 상승했다.

외국인은 2009년 9월과 2011년 7월에 연이틀 2조원 이상을 순매수한 적이 있었지만 모두 특별한 이벤트가있었다.

2009년엔 한국이 FTSE 선진지수에 편입되면서 자연스럽게 해외자금이 유입됐고, 2011년엔 외국인이 KB금융 지분을 대량 매수한 효과가 작용했다. 그런데 이번엔 특별한 이벤트가 없었다. 더구나 유럽에서는 그리스가 '선택적 디폴트(부도)' 등급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식의 우울한 소식만 들려왔다. 외국인은 왜 갑자기 한국 주식을 사들이고 있는 것일까?

◇유럽중앙은행이 푼 돈, 신흥국으로?

전문가들은 작년 12월 유럽중앙은행(ECB)이 장기대출프로그램(LTRO)을 통해 푼 4830억유로의 유동성 효과가 가장 큰 이유라고 분석하고 있다. LTRO는 ECB가 1%대의 저금리로 은행에 3년간 돈을 빌려주는 것으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양적완화'(국채 매입을 통해 달러를 시중에 푸는 것)에 버금가는 유동성 공급 정책이다. 3년간 현금확보가 보장된 유럽 은행들의 파산 위험이 낮아지고 신용도가 높아졌기 때문에, 선진국 투자자들의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심리가 회복돼 우리나라 같은 신흥국 주식 투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해석이다. 이탈리아 등 위험국가 국채 투자가 늘어나 금리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의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김학균 대우증권 투자전략 팀장은 "시중에 풀린 자금이 유럽과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성장이 견조할 것으로 보이는 신흥국 주식으로 다시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로 캐리트레이드 본격화?

외국인의 공격적 매수 배경과 관련, 유로화 가치가 계속 떨어지고, ECB의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유로 캐리트레이드'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캐리트레이드란 저금리 통화를 빌려 고금리에 가치가 높아지고 있는 통화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되면 환차익과 금리차익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

이같은 해석의 근거는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가 계속 떨어지고 있는데다, 작년 말부터 아시아 통화가 유로화 대비 강세를 보이기 시작한 점이다. 유로화 대비 원화 가치는 작년 12월 초 대비 3.8% 올랐고, 인도네시아 루피화 3.8%, 홍콩 달러화 4.0%, 브라질 헤알화 5.7%, 중국 위안화는 4% 각각 절상됐다.

금리(현재 ECB 기준금리 연 1.0%)가 낮고 가치가 떨어지는 통화(유로화)를 빌려 한국 등 고금리 강세 통화의 자산에 투자하면 금리차익과 환차익을 둘 다 노릴 수 있어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실제 한국 증시는 12월 초부터 현재까지 2.3%, 인도네시아 4.8%, 홍콩 5.8%, 브라질 증시는 7.4% 각각 상승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ECB가 2월에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높고, 2월 말 2차 장기대출 프로그램이 예정돼 있어 신흥국에 대한 유로캐리트레이드가 더 활성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연초부터 지난 20일까지 서울 증시로 몰려온 외국인 자금 중 유럽계 자금이 2010년 10월(1조2743억원) 이후 최대인 9917억원에 달했는데, 이중 유로 캐리트레이드 자금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다.

◇외국인 투자, 지속될지는 불투명

외국인의 공격적 매수세가 계속될까. 변수가 많아 전문가들도 자신있는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김학균 팀장은 "그리스가 사실상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태로 가고 있고, 이탈리아가 긴축을 제대로 못하겠다고 하는 식으로 불협화음이 나온다면 언제든 매도세로 돌아설 수 있다"며 "아직은 안정적인 흐름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재훈 미래에셋증권 팀장도 "유로존 위기가 또 부각되면 안전자산인 달러 수요가 늘면서 아시아 통화가치가 더이상 오르기 힘들어 외국인 순매수 흐름이 끊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의견도 있다. 김정훈 한국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유럽 위기는 주가에 이미 반영됐고, 외국인의 투자심리가 회복되면서 올해 증시가 작년보다 더 좋아질 조짐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