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의 질 파악 못하는 엉터리 일자리 통계

대학 졸업 후 직장을 못 구해 패스트푸드점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채정수(25ㆍ가명)씨는 지난 설 명절 연휴 때 근무를 자청했다. 지인들에겐 특별 수당을 받기 위해서라고 얼버무렸지만, 실제론 친척들 보기가 두려워서였다. 채씨의 유일한 소원은 하루빨리 번듯한 직장에 취업해 친지들에게 자랑스럽게 명함을 건네는 것이다.

20~30대 청년층의 불만은 일자리 자체가 없어서라기보다 '질 좋은' 일자리가 없다는 데 있다는 게 다수 전문가의 진단이다. 하지만 정부는 수치상 일자리 증가에만 집착하면서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 현재 정부의 고용 통계로는 일자리의 질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전혀 파악할 수 없다.

◇고용의 질(質) 알 수 없는 통계

현재 일자리의 질(質)과 관련된 고용 통계로는 ▲종사자 지위별 분류 ▲근로계약별 분류 ▲취업시간대별 분류 등 크게 3가지가 있다.

'종사자 지위별 분류'는 취업자를 상용, 임시, 일용, 자영업자, 무급가족종사자(월급을 받지 않고 가업에 종사)로 분류하고 있다. 근로계약이 1년 이상이면 상용직, 1개월~1년은 임시직, 1개월 미만은 일용직으로 분류된다. 이 기준에 따르면, 2년 단위로 근로계약을 맺는 비정규직은 상용직에 포함된다. 지난해 상용직은 2010년보다 57만5000명 증가하며 취업자 증가세를 주도했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고용의 질이 좋아졌다고 자평했다. 상용직 일자리 증가분의 상당 부분은 비정규직일 가능성이 크지만, 통계는 이를 포착하지 못한다.

통계청은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1년에 두 차례 '근로계약별 분류' 통계를 통해, 비정규직이 얼마나 늘고 있는지 별도로 조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정식 근로계약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계약서 없이 일하는 근로자의 경우 통계의 '사각지대'에 놓인다. 예컨대, 근로계약서 없이 일하는 식당 종업원의 일부는 정규직으로 잡히고 있다.

또 '취업시간대별 분류'는 조사 시점에 따라 결과에 편차가 커 고용의 질 변화를 알 수가 없다. 일주일에 36시간 미만을 일하면 파트타임 등 불완전한 일자리로 볼 수 있는데, 연휴가 끼어 있는 기간에 조사가 이뤄지면 정상 취업자도 불완전 취업자로 분류되는 일이 벌어진다. 지난해 8,9월이 대표적이다. 각각 광복절과 추석연휴가 끼어 있는 주간에 조사가 이뤄져 36시간 미만 일자리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그래픽 참조〉 수치만 봐선 고용의 질이 나빠진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이 어떤지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임금수준별 일자리 통계 필요

이 같은 고용 통계의 맹점을 일거에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임금수준별 취업자수 조사'다. 월 100만원대, 200만원대 등 계층별로 구분해 취업자수 증감을 살펴보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이런 조사는 전혀 안 되고 있다. '조심스럽고 민감한 문제라서'라는 게 정부의 해명이다. 정부가 질 좋은 일자리 창출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임금대별 취업자수 증감 통계부터 뽑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임금은 일자리의 질을 알려주는 가장 간단하면서 확실한 지표"라며 "이 통계를 토대로 고용 정책을 펼쳐야 정책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