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왔어요… 작가 박완서의 문학이, 내 어머니의 일생이

팔순을 맞아 준비했던 전집이 이제는 유고 전집이 됐다.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출판기념회가 26일 오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소설가 박완서(1931~2011)가 평생 쓴 장편 및 연작소설 15종을 세계사에서 모두 22권으로 묶어낸 전집이다. 지난 22일은 담낭암으로 세상을 떠난 작가의 1주기였다.

원래 이 전집의 첫 기획회의는 2010년 5월 3일 열렸다. 기획위원은 문학평론가 이경호 권명아 홍기돈. 그때만 해도 곧 팔순을 맞는 작가가 생전에 자신이 쓴 장편 소설을 한자리에 모은다는 취지였다. 등단작 '나목'(1970)을 시작으로 고인은 직접 자신의 원고를 손보고, 다듬고, 매만졌고 '목마른 계절'(1978)을 교정 보다가 쓰러져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고인이 떠난 자리를 맏딸인 수필가 호원숙(58)씨가 대신했고, 다른 기획위원들과 숙의했다. 호씨는 이날 "가족이면서 독자로서 어머니의 문학을 다시 대하는 것은 축복이고 고통이었다"면서 "부디 이 전집이 새로운 독자들과 만나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내기를 감히 소망한다"고 했다.

전집은 제목만 훑어봐도 작가의 문학과 일생을 떠올리게 만든다. '나목'을 시작으로 '목마른 계절' '도시의 흉년' '휘청거리는 오후' '살아 있는 날의 시작' '오만과 몽상' '엄마의 말뚝'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서 있는 여자' '미망'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아주 오래된 농담' '그 남자네 집'이 그 이름들. 특정 주제에 함몰되지 않았던 작가의 폭넓은 작품세계는 때론 분단과 6·25를 아파하고(나목), 타락한 중산층을 꼬집으며(도시의 흉년), 여권(女權) 문제의 심각성을 다루면서도 여성운동의 허위의식을 동시에 비판하기도(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했다.

기획위원인 이경호 문학평론가는 작가 박완서와 이번 전집의 의미를 세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는 작가 박완서가 장편과 중·단편에 고루 빼어났던 예외적 작가라는 점. 또 어떤 뛰어난 작가라고 하더라도 대부분 전성기는 10~20년에 그치는데, 고인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당대의 1급 작가들과 경쟁한 당당한 현역 작가였다는 것. 세 번째로 문학적 평가 못지않게 대중적 지지까지 뜨거웠던 희귀한 작가였다는 점이다.

이날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후배 작가 은희경은 고인의 삶과 문학에 대한 태도를 언급했다. 그는 "모든 걸 알고 계셨을 것 같은데도 항상 긴장하고 의심하는 선생님의 작가적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면서 "인생에 대한 긴장과 나를 소수로 생각하는 균형감각을 많은 독자들이 나눠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집은 어색한 옛 표현을 자연스럽게 고치고, 권마다 평론가들이 다시 쓴 해설을 통해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반가운 것은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책 디자인과 작가의 사진들이다. 권마다 표지엔 그 장편소설을 쓰던 당시의 작가가 때로는 부끄러워 고개 숙이고, 때로는 수줍게 미소 지으며, 자주 소박하게 웃는 모습의 사진이 실려 있다. 작품으로, 사진으로 다시 독자들의 곁으로 돌아온 선생이 반가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