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신문화의 탄생’] [8] 활동사진 촬영팀, ‘강도단’ 오인받아 경찰 연행

1920년대 초 어느 날, 경주 불국사에 경찰관들이 들이닥쳤다. 절 안에 있던 외지인들 수십명을 연행하는 바람에 고요하던 절이 아수라장이 됐다. "총칼 든 보따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절에 몰려왔다"고 불국사 스님들이 신고한 것이다. '강도단이 아닌가 하야' 붙잡았던 무리들은 어처구니없게도 활동사진을 '로케슌'(location·야외촬영)하러 내려온 연극인 이기세(李基世)씨 등의 촬영 팀이었다.

1919년 연쇄극 '의리적 구토'를 촬영한 이래, 이 땅에서 여러 활동사진들이 제작되고 있었지만 '촬영'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많던 시절의 소동이었다. 촬영팀 역시 사전 협조도 없이 그냥 카메라를 돌렸던 시절이다. 체포된 촬영팀은 '활동사진을 박는 중'이라는 것을 이해시키고 풀려나기까지 '장시간의 취조'를 받아야 했다. 이 팀은 경주에 앞서 대구 달성공원에서 촬영하려다 '(촬영을) 생후 처음 보는 민중'이 "삼사십 리 밧게까지 구경을 오게되여 관중이 너머 만흔 관계로" 촬영을 포기할 지경이 되기도 했다. 일제하의 조선일보는 '개척자들의 형극로(荊棘路·가시밭길)'라는 제목의 특집을 통해 초창기 영화인들의 어려움을 기록했다.(1938년 1월 3일자)

새로운 길을 간 80여년 전 영화인들의 야외 촬영은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1927년 5월 25일에는 나운규 감독의 '금붕어'를 촬영하던 중, 여자 스타 신일선(申一仙)이 '깁히가 약 삼십척(약 9m)가량이나 되는' 한강물에 빠져 실신하는 바람에 촬영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 영화는 한 쌍의 금붕어같이 다정하던 젊은 부부가 오해 때문에 겪는 아픔을 묘사한 비극이었는데 여배우가 물에 빠진 금붕어가 된 것이다. "촬영대원들은 넘우나 의외에 놀라움을 마지 못하야 일제히 물 속에 뛰어들어 그야말로 활동사진과 가튼 대활극을 연출"했다. 활동사진 역사에서 처음 일어난 야외 촬영 사고라고 신문은 크게 보도했다.(1927년 5월 27일자) 신일선은 이후 조선일보와 나눈 문답에서 "지금까지 제일 좋았던 일이 뭐냐"는 물음에 '촬영 중 한강에 빠졌다가 구조되엇든 일'을 꼽기도 했다.(1927년 6월 2일자)

전문 촬영소나 세트장이 거의 없던 초창기엔 거리의 야외 촬영이 빈번했다. 조선키네마가 나운규 주연의 '야서(野鼠)'를 촬영할 땐 청량리 일대가 수많은 행인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1927년 3월 12일자) 윤백남 감독이 '운영전(雲英傳)'을 찍으며 400년 전 조선시대 궁중 연회를 촬영할 땐 밀양 권번(券番·기생조합)의 후원을 받으며 진짜 기생들이 대거 출연하여 촬영한 사실이 화제가 됐다.(1924년 7월 16일자)

1920년대의 유명 촬영기사 이필우(李弼雨)·명우(明雨) 형제는 하도 낡은 기계를 쓰다 보니 "한 커트 한 커트마다 촬영기에 고장이 생기여서 무진 애들을 썼다."(1938년 1월 3일자) 1926년 여름, 서울 창신정(昌信町·창신동)에 간판을 단 나운규프로덕션 사람들은 "자금은 업서지고 영화열은 심한" 고통 속에 배고픔을 면하려고 영화용 의상 거의 모두를 전당포에 잡혔다. "합숙소에는 양복 한 벌만 벽에 거러놓코 모두가 사루마다(팬티)만 입고" 있다가 외출할 때만 그 '공용 양복'을 입고 나가는 코미디를 연출했다.(1938년 1월 3일자) 일제하 최고의 영화 '아리랑'이 이런 고생 속에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