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두 눈 되어 버스가 말을 해요"

"요새 우리 집 가는 버스가 말을 해요. 버스 타기가 참 편해졌어요."

서울 우이동 국립재활원 앞 버스정류장에서 검은 안경을 끼고 버스를 기다리던 50대의 2급 시각장애인이 "세상 많이 좋아졌다"면서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버스 한 대가 정류장에 오더니 "동아운수 151번 버스가 도착했습니다"라는 방송이 나왔다. 그는 "이게 바로 '말하는 버스'"라고 했다.

서울에 처음 등장한 '말하는 버스'는 동아운수 임진욱(46) 대표가 아이디어를 냈다. 지난해 11월 우이동~흑석동 중앙대 간을 운행하는 151번 버스 38대 모두에 음성안내 시스템을 설치했다. 대당 200만원씩 총 7600만원이 들었다. 비용은 전부 임 대표가 댔다.

'말하는 버스'는 그가 중학교 때부터 꿈꿔온 버스다. 그가 다녔던 여의도중에는 시력이 안 좋은 학생들을 모은 '약시반'이 있었다. 약시반 학생들은 정류장에서 주변 친구들에게 "○○번 버스가 오면 좀 얘기해줄래?" "이 버스 ○○번 맞아?"라고 묻곤 했다. 아버지가 동아운수를 운영하던 임씨는 그 친구들을 보면서 '내가 친구들이 편하게 탈 수 있는 버스를 만들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임씨는 2007년 동아운수 대표이사가 된 뒤 어릴 적 다짐대로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버스 고안에 본격 나섰다. 2008년 정부 보조를 받아 저상(低床)버스를 도입하면서, 따로 투자해서 준(準) 저상버스를 만들었다. 준저상버스는 버스 승하차 문의 계단을 단 한 개로 줄인 것. 시각장애인이나 노인·어린이 등 교통 약자를 위한 서비스다.

임 대표는 총 5억6000만원을 들여 51대의 준저상버스를 도입했다. 현재 서울에서 운행 중인 준저상버스 53대 가운데 거의 대부분인 51대가 동아운수 버스다. 준저상버스 도입에 이어 작년 말에 시각장애인용 '말하는 버스'를 선보인 것이다. 임씨는 지난 연말 국립재활원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국립재활원은 "국립재활원을 오가는 장애인에게 승하차가 불편하지 않게 해준 데 대한 감사의 의미"라고 밝혔다.

임 대표는 2009년 녹내장 판정을 받았고, 자신도 언제 시력을 잃을지 모르는 처지다. 그는 "내가 시력이 좋지 않기 때문에 좀 더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것 같다"며 "앞으로도 '말하는 시내버스'를 늘리고, 버스 안에 장애인용 편의시설을 더 설치해가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