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에 이정재 있었다면 '한반도'에는 곽희성이 있다

"해외 로케이션 촬영 때문에 공항에 가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황정민 김정은 정성모 김지숙…. 내가 이런 분들과 연기를 하다니. 괜히 뺨도 만져보고, 하늘도 올려다봤다."(웃음)

곽희성(22)은 이력이 독특한 신인 배우다. 중앙대 불문과 1학년. 본래는 첼로를 전공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학교에 입학했고, 프랑스 파리 음악원에선 전문과정을 수료했다. 기타·피아노 연주도 수준급. KBS 2TV '불후의 명곡'에서 '시크릿' 송지은이 노래할 때 옆에서 첼로 솔로 연주를 한 적도 있다.

그가 2월 6일 시청자에게 첫 연기 신고를 한다. TV조선 창사특집 24부작 블록버스터 드라마 '한반도'. 여주인공 림진재(김정은)를 짝사랑하면서 그림자처럼 도와주는 북한 군인 민동기를 연기한다. 데뷔치곤 비중이 큰 주연급이다. 제작진은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여주인공 고현정을 몸으로 지켜냈던 이정재에 해당하는 역할로 제3의 주연"이라고 했다. 30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곽희성은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매일 2시간씩 자며 대본을 읽었다"고 했다.

―정말로 '뜻밖의 캐스팅'이었겠다.

"지금 소속된 회사가 드라마 OST 작업도 많이 한다. 윤선주 작가님이 '한반도' OST 미팅 때문에 오셨다가 내 사진을 보고 '오디션 한번 보라'고 했다. 오디션을 한달 반 봤다. 대본 리딩 하고 카메라 테스트도 여러번 했다. 대본을 읽으면서 '와, 이런 드라마라면 그냥 지나가는 연구진이나 기술자로만 나와도 영광이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디션 끝날 무렵 '네가 민동기 역할이다'란 말을 들었다."

―첫 촬영이 루마니아 해외 로케이션이었다.

"극 중에선 서명준(황정민) 박사와 동등한 입장에서 맞서는 연기를 해야 한다. 나 같은 신출내기가 황 선배 같은 분하고…. 감정 잡으려고 처음엔 일부러 선배를 멀리했다. 연기하면서 나도 모르게 주눅든 모습을 보일까 봐 그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황 선배가 먼저 다가와 호흡을 맞춰주고 발성도 가르쳐 주시더라. 김정은 선배도 늘 시간을 일부러 내서 같이 얘기하고 감정선 다듬어주고 그런다. 덕분에 이젠 정말 촬영이 즐겁다."

―첼로를 전공하다 어떻게 연기자가 됐나.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의과대학을 갈까 생각한 때도 있었고 축구를 워낙 좋아해 운동선수도 되고 싶었다. 그러다 연기자가 되면 어떨까 생각했다. 배우가 되면 뮤지션도, 운동선수도, 의사도 다 간접경험으로 해볼 수 있지 않나. 그렇게 고3 무렵부터 배우를 꿈꿨다."

―이제 겨우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생이 됐다. 액션 연기하기가 쉽진 않았겠다.

"군대도 안 가본 내가 북한 군부 실력자를 연기하려니…. 촬영 전 한달 반 정도는 일부러 온종일 북한 군복만 입고 지냈다.(웃음) 매일 열중쉬어 차렷 엎드려뻗쳐부터 시작해서 총 쏘는 연습, 뛰는 연습, 걷는 연습까지 다시 했다. 루마니아에서 추격신을 찍을 땐 내 바로 뒤에서 달려오던 차량이 전복돼 큰일 날 뻔했고, 총을 6시간 내내 같은 자세로 들고 서 있을 때도 있었다. 최근엔 수심 6m 물속에 들어가 12시간 넘게 눈 뜨고 촬영했다. 하지만 이 정도 몸 힘든 건 일도 아니다. 황정민 선배는 이틀 내내 30시간 넘게 물속에서 촬영하고도 다음날 새벽같이 나오더라."

―원래 성격은 어떤가.

"실은 막내라 애교도 많은데 연기하면서 성격이 점점 변하더라. 말도 없어지고. 역할 소화를 위해 탈북한 분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도 많이 했다. '한반도' 촬영을 하면서 연기가 얼마나 섬세한 분석이 필요한 과정인지 배우고 있다. 그 작업을 이형민 감독, 대선배들과 하게 되다니! 출연료를 받을 게 아니라 레슨비를 내야 할 것 같다.(웃음) 첫 방송이 무척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