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다시 中民… 사회개혁 이끄는 중산층이 앞으로도 변화 이끈다

80년대 대학가는 사회변혁 주체 논쟁으로 들끓었다. 노동자냐, 시민이냐 갑론을박 중에 제도권의 한 사회학자가 '중민(中民)'을 들고 나왔다. '부르주아(시민계급) 역시 기득권층일 뿐'이란 소리가 높던 시기 이 중견 학자는 "사회개혁성이 강한 중산층의 '중민'이 사회 변화를 이끌 것"이라고 주장했다. 1987년 뜨겁던 6월 시청 앞 광장에 화이트칼라가 몰려나와 '독재 타도'를 외치자 사람들은 그의 책을 다시 펴봤다. 한상진(67) 서울대 명예교수.

그가 다시 중민을 들고 나왔다. 30일 사재(私財)로 세운 중민사회이론연구재단(중민재단) 창립 세미나에서 그는 '중민이론과 제2근대화'를 역설했다.

―다시 중민을 말하는 이유는?

"중민을 80년대 민주화 주체로만 본다면 시효는 끝났다. 하지만 중민의 핵심은 탈인습적 가치관이다. 그것은 민주화로 소진된 게 아니라 보다 미시적으로 생활 속에 녹아들어 갔다. 90년대 각 사회 분야로 들어가서 조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여 권위주의 문화를 민주적으로 바꾸는데 기여했다. 1989년 경실련을 필두로 참여연대 같은 NGO의 주력군도 이들이었다."

―21세기 디지털시대에도 유효한가.

"80년대 민주화 세대는 IT를 산업으로 이끌고 인터넷 문화를 새 공론 활동과 결합시켰다. 요즘의 SNS에 의한 소통 혁명도 20대 참여가 많지만, 주도층은 중민이다. 이들은 중산층이면서 합리적 사회 변화를 지향한다."

―외국의 '교양 중산층'과 중민은 뭐가 다른가.

"서구의 '68세대'나 일본의 '전공투(全共鬪)' 세대는 한때 들끓다가 사그라졌는데, 우리 경우에는 계속 이어지고 힘을 얻어간다. 80년대 형성된 힘이 각 분야의 엔진이 되고 소통구조를 바꾸고 있다."

―중산층이 줄면서 '1 대 99' 사회로 간다는 우려도 있다.

"중산층 하락은 객관적 지표로도 확인된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양극화에도 불구하고 중민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은 '나의 성공 이면에는 많은 낙오자가 있다'고 생각하고 부채 의식을 느낀다. 안철수 교수가 '사회에 빚지고 있다'고 한 것은 대표적 사례다."

―근대에 대한 반성이 무성한데 제2근대화론은 또 뭔가?

"제2근대화론은 우리의 근대화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놀라운 성취에도 불구하고 의도하지 않은 심각한 부작용에 직면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균형감각에서 출발한다. 서구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해법을 우리가 모색해 보자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