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세움 골프장… 강심장만이 살아남는다

'콜로세움', '파티 홀', '잔디 위에서 벌어지는 최고의 쇼'….

2일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웨이스트 매니지먼트 피닉스 오픈이 열린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 TPC(파71·7216야드)에서 모든 관심은 16번홀(파3·162야드)에 쏠린다. PGA 투어 대회 전체를 통틀어 유일하게 웃고 떠들고 춤추고 취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신사적인 매너와 에티켓을 중시하는 골프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바로 이곳에서 매년 벌어진다.

16번홀은 투어 대회가 열리는 파3홀 중 길이가 짧은 편에 속한다. 프로 골퍼들이 8번이나 9번 아이언으로 버디를 잡기 쉽게 돼 있다. 그러나 지붕이 있는 관람석에 둘러싸여 있는 이 홀에서는 최대 3만명의 갤러리가 빽빽하게 들어차 훌리건처럼 괴성을 질러댄다. 경기진행요원이 '조용히(quiet-please)' 팻말을 들어보지만 별 소용이 없다. 팬들은 선수 이름은 물론 선수의 애완동물 이름까지 외쳐댄다. 이 홀의 작년 평균타수는 3.017타였다.

선수들은 15번홀의 그린에서 벗어난 뒤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 16번홀 티잉 그라운드에 들어선다. 갑자기 보는 밝은 빛에 눈이 부시는 데다 수많은 갤러리의 함성에 둘러싸여 선수들은 엄청난 긴장감에 휩싸인다. 버디를 잡거나 멋진 샷을 해내면 대회장이 떠나갈 듯한 환호를 받지만, 그린에 공을 올려놓지 못하면 무자비한 야유의 대상이 된다. 위창수(40)는 이 홀에서 샷을 한 뒤 "우우~"대신 "위이~"라는 야유를 받곤 했다. 애리조나에서 대학을 나온 필 미켈슨(미국)은 언제나 열렬한 환호를 받는다.

올해로 77회째를 맞는 피닉스 오픈은 1987년부터 대회장을 이곳으로 옮겨 개최했다. 도심에서 30㎞ 이상 떨어진 외곽 지역이어서 '갤러리가 한명도 오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그러나 16번홀 티박스 바로 뒤에 패밀리 레스토랑 TGI프라이데이스의 음식을 파는 텐트가 생기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인근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학교를 마치고 이곳에 들러 맥주를 사 마시고는 술에 취해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16번홀이 유명세를 타면서 피닉스 오픈은 PGA 투어에서 갤러리를 가장 많이 끌어모으는 대회 중 하나가 됐다. 1~4라운드가 열리는 나흘간 50만명이 몰린다. 올해 4라운드는 미국 최대 스포츠 이벤트인 미식축구 챔피언 결정전 수퍼볼과 같은 날 열리지만 대회 조직위원회는 입장객이 나흘간 6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6번홀에서 지난 25년 동안 나온 홀인원은 8차례였다. 그 중 하나가 1997년 타이거 우즈(미국)가 9번 아이언으로 성공시킨 홀인원이다. 당시 '콜로세움'은 흥분의 도가니가 됐고 우즈는 양팔을 들어 올리며 갤러리와 함께 기뻐했다. 그러나 2년 뒤에는 권총을 소지한 우즈의 팬이 우즈를 향해 접근하다 경호원들에게 붙잡혀 대회장에서 쫓겨나는 사고도 발생했다.

이후 대회 조직위는 안전요원과 음주순찰요원을 16번홀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주류판매 룰을 강화해 술에 취한 관중도 전보다는 많이 줄었다고 한다. 알렉스 클라크 대회 조직위원장은 "미성년자나 이미 술을 많이 마신 사람에게는 술을 팔지 말 것을 주류판매원들에게 교육시킨다"며 "술을 지나치게 많이 마신 사람은 대회장에서 쫓아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대회 개막을 앞두고 야후 스포츠는 16번홀에서 경기를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는 팁을 소개했다. 갤러리가 가장 흥분하는 자리인 티잉 그라운드 위쪽에 오후 내내 머물며 '캐디 경주 내기'에 참여해볼 수 있다. 이 자리에 앉은 갤러리는 '어떤 캐디가 티잉 그라운드에서 그린까지 가장 빨리 걸어가나'를 두고 내기를 하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제리 켈리(미국)의 캐디는 그린까지 전력 질주를 해 갤러리의 뜨거운 환호를 받기도 했다.

'16번홀의 추억'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기념품을 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대회장에서는 '콜로세움:16번홀'이라고 써 있는 티셔츠와 '조용히' 팻말을 판매하고 있다. 올해는 미국의 골프 스타인 필 미켈슨·더스틴 존슨·리키 파울러(이상 미국)가 1·2라운드에서 한조에 편성돼 '콜로세움'이 들썩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계 선수로는 양용은(40)과 노승열(21), 존 허(22) 등 7명이 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