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상] 서울 삼청동 '작은 가게' 어느덧 1000개… 대형매장 발 못붙였다

북촌 한옥이라는 전통과 100여곳에 달하는 갤러리, 소규모 박물관이라는 문화적 기반이 흡인력을 더해주고 있다. 서울시는 2008년 한옥선언을 선포한 데 이어 2010년에는 한옥 보존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밝히며 북촌을 명소로 부각시켰다. 북촌 한옥의 대표성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현대갤러리와 국제갤러리 등 유명 갤러리들이 밀집해 있고 이들이 전시장과 함께 고급 레스토랑을 열어 견인차 역할을 했다.

한파가 다소 누그러진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파로 발이 묶였던 사람들이 삼청동 거리에 나와 올망졸망 늘어선 패션숍과 액세서리 가게를 기웃거리거나 아담한 카페로 들어가 따뜻한 차로 몸을 녹였다.

◇삼청동은 '소(小)점포 왕국'

삼청동번영회에 따르면 이곳에 문을 연 레스토랑·카페·패션숍·구두점·액세서리가게 등은 무려 450여개에 달한다. 삼청동번영회 측은 "삼청동은 '삼청로'라는 도로를 중심으로 좁게 봤을 때, 동십자각에서 삼청공원까지를 말한다"고 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흔히 부르는 '삼청동' 하면 소격동·가회동·사간동·팔판동·화동·안국동·송현동까지를 아우른다. 인터넷 사이트 등에서는 '범(汎)삼청동' 지역의 레스토랑과 카페, 패션숍 등이 1000개소를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규모 개발이 비켜간 삼청동은 대기업 레스토랑 체인보다 개인이 창업한 레스토랑이 입소문을 타고, 신진 디자이너들이 재능을 살려 디자이너숍이나 구두매장을 열어 성업 중인 곳이다. 작은 공방을 겸한 액세서리 가게들도 젊은 여성들의 인기를 독점하고 있다.

이건선 삼청동번영회 감사는 "6년 전 서울시에서 삼청동에 문화거리를 조성하면서 갤러리들이 많이 들어왔다"며 "주말에는 2만명 정도의 인파가 몰린다"고 말했다. 2001년 이곳에 문을 연 레스토랑 '수와래' 매니저인 방승진(36)씨는 "처음에는 주변에 식당이나 가게가 몇개 없었다"며 "몇년 새 카페나 작은 가게들이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카페 루소&루소의 박영실(24)씨는 "2007년 문을 열었지만 2008년부터 손님이 많아지기 시작한 것 같다"고 했다.

◇개성 있는 비즈니스와 창조적 소비 욕구 결합

삼청동 450여개 '소(小)점포'의 성공은 개성 있는 비즈니스와 창조적 소비 욕구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삼청동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김이재 경인교대 교수는 "삼청동은 주인이 직접 만든 홈메이드 음식, 전통을 강조하는 음식이나 독특한 인테리어를 갖춘 레스토랑이 주를 이뤄 청담동과 구별된다"며 "패션숍도 초미니 가게일지라도 디자이너의 독창성을 반영하는 다품종 소량제품, 수공예 니트, 빈티지 패션 등 개성미를 우선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개성적이며 창의적 문화와 취향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이날 삼청동에서 만난 대학생 주은비(19)씨는 "사진 전시를 보러 왔다가 들렀다"면서 "옷이나 구두, 액세서리가 예쁜 게 많아 자주 오고 싶다"고 말했다.

◇삼청동 이펙트 서촌(西村)까지

강홍빈 서울역사박물관장은 삼청동에 대해 "새로운 문화 소비를 원하는 문화적 욕구를 바탕으로 활성화된 지역"이라며 "특히 여성들이 고소득 직종에 진출하고 독신 여성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런 현상이 가속화됐다"고 했다.

삼청동이 성공적인 모델 케이스로 떠오르자 한옥이 밀집한 서촌(西村)도 최근 주목받고 있다. 아트사이드·시몬갤러리 등 갤러리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 가운데 톡톡 튀는 카페나 가게들이 자리 잡고 있다. '삼청동 이펙트'가 서촌에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