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대부도 '고기 회식' 했다

조선의 탐식가들

김정호 지음｜따비｜336쪽｜1만5000원

조선 건국이 민초들의 식생활에 끼친 변화는 토지 개혁으로 쌀밥을 먹게 된 것과 육식의 확산이었다. 고려 시대에는 쇠고기를 많이 먹지 않았다. 살생을 죄악시하는 불교문화에 더해, 소는 사람 대신 땅을 갈아 곡식을 심게 해주고 무거운 짐을 운반해주는 동물이라 '먹는 대상'으로는 보지 않는 분위기였다. 육식 문화는 원나라의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층 사이에 되살아났고,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이 들어서자 유례없는 쇠고기 열풍이 불었다.

'고기 먹는 날'도 있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1849)'에는 "서울 풍속에 음력 10월 초하루날, 화로 안에 숯을 시뻘겋게 피워 석쇠를 올려놓고 쇠고기를 기름장·달걀·파·마늘·산초가루로 양념한 후 구우면서 둘러앉아 먹는 것을 '난로회(煖爐會)'라고 한다"는 기록이 나온다. 난로회는 18세기 연암 박지원과 정조의 글에도 등장한다. '홍재전서(弘齋全書·1814)'는 정조 5년(1781) 겨울, 정조가 밤늦게 일하는 규장각·승정원·홍문관의 유생들을 불러 난로회를 열었다고 전한다.

'우심적(牛心炙)'은 진나라의 주의(周�g)가 소 염통을 구워 누구보다 먼저 왕희지에게 주었다는 고사가 담긴 음식이다. 그 뒤로 우심적은 덕망이 높은 사람이나 지인에게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대접하는 명예로운 음식으로 선비들 사이에 퍼졌다. 소의 염통을 얇게 저며서 양념간장으로 간을 하여 구운 음식으로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좋다. 조선 최대 시문집 '동문선'의 책임 편찬자 서거정의 '사가집(四佳集·1488)'에 "젊은 날엔 늘 우심적을 생각했는데(常懷少日牛心炙)"이란 구절이 나오고, 정약용의 시에서도 우심적이 보인다.

'조선의 왕세자 교육' 등 역사교양서를 쓴 아동문학가인 저자는 맛을 탐한 조선의 탐식가들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가장(家獐)'이라 부른 개고기는 조선 건국 이후 서민들의 단백질 공급원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정조가 화성 행차를 하면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에 올린 음식들을 기록한 책 '원행을묘정리의궤'(1795)에는 '구증(狗蒸)'이 나온다. '개고기찜'으로, 왕실의 연회상에 개고기가 오른 경우는 흔치 않았다. 정약용도 오랜 유배생활을 버텨내기 위한 호구지책으로 개고기를 먹었다. 그는 흑산도에 유배된 형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에서 "창자나 밥통은 씻어도 그 나머지는 절대로 씻지 말고 곧장 가마솥 속에 넣어 맑은 물로 삶아야 한다"며 개고기 삶는 법을 전하고 있다. 다산은 이 조리법을 실학자 박제가로부터 배웠다.

'홍길동전'을 쓴 허균은 사대부들이 식탐을 경계했던 것과 달리 탐식가였다. 조선 최초의 음식 품평서라 할 '도문대작(屠門大嚼·1611)'을 쓴 음식 칼럼니스트이기도 했다. 조선 팔도의 명물 토산품과 별미 음식을 소개한 '도문대작'에는 병과(餠科·떡 종류) 음식 11, 채소와 해조류 21, 어패류 39, 조수(鳥獸) 6, 서울의 계절 음식 17종 등이 실려 있다. 별미 음식으로 웅장(熊掌·곰 발바닥), 표태(豹胎·표범 태아), 녹설(鹿舌·사슴 혀), 녹미(鹿尾·사슴 꼬리)도 소개하고 있다. 아무나 쉽게 먹을 수 없는 조선에서 가장 진귀한 요리들이다. 연산군과 영조가 특히 좋아했다는 녹미에 대해 허균은 "부안에서 그늘에 말린 것이 가장 좋고, 제주도의 것이 그다음이다"라고 쓸 만큼 식도락가였다.

그 외에도 '콩죽·콩장(콩자반)·콩나물 등 콩으로 만든 세 가지 음식을 주식으로 삼자'는 삼두회(三豆會)를 만들며 지극한 콩 사랑을 실천한 성호 이익, 집에 선부(膳夫·남자 요리사)를 두고 산해진미를 차려 먹었던 윤원형 등 여러 인물과 음식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추천사를 쓴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숨겨져 있고 흩어지고 조각난 자료의 퍼즐을 짜 맞추어 조선 시대 음식문화의 주요한 장면을 복원했다"고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