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우의 커튼 콜] '생각이 에너지다' '진심이 짓는다'… 인문학으로 광고 만드는 남자, 박웅현

오스카 와일드 식으로 말하자면, 모든 광고가 시궁창에 있어도 그 중 몇몇은 별들을 바라보고 있다. 어떤 이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또 다른 이는 문학적 감수성으로 광고의 격을 높인다. "시속 100㎞로 달리는 롤스로이스에서 가장 큰 소음은 시계 초침 소리입니다"라는 카피를 쓴 데이비드 오길비는 "신형 롤스로이스는 엔진소음을 크게 줄였습니다"라고 쓰지 않음으로써 '광고의 아버지'가 되었다.

멋진 광고는 제품이 아닌 이미지와 라이프 스타일을 판다. 스티브 잡스는 1984년 애플 광고에서 조지 오웰의 묵시록(默示錄)에 해머를 던졌다. 이 광고 역시 신제품 컴퓨터를 알리는 것이었으나, 사람들은 소설 '1984'의 암울한 예견이 산산조각나는 쾌감을 얻었다.

박웅현(51)은 광고에 인문학적 상상력을 불어넣어 이 자본주의의 꽃에서 인공향(人工香)을 탈취해 왔다. 그는 "광고를 작품으로 생각한 적이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말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의 광고를 작품처럼 여긴다. 일찍이 동화책 '노란 토끼' 시리즈를 펴냈고 일상의 사진에 짧은 글을 붙인 책 '시선'을 내놨던 그는 2009년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라는 베스트셀러를 펴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어 최근엔 자신의 독서 편력을 강의한 책 '책은 도끼다'로 광고쟁이가 아니라 인문학 애호가의 본색을 드러냈다. 그의 직함은 알파벳 12개로 이뤄져 있다. 'TBWA KOREA ECD'다. 'TBWA'는 뉴욕에 본사를 둔 광고회사이고 그는 한국지사의 'Executive Creative Director'다. 광고 제작 책임자란 뜻이겠다. 서울 신사동 TBWA 9층의, 한강과 남산이 보이는 그의 북향(北向) 사무실에서 지난 1일 그를 만났다.

◇아빠 박웅현

'인문학으로 광고하다'가 나온 뒤 얼마 안 돼 서점에서 '인문학으로 콩갈다'란 책을 발견했다. 이 무슨 삼류 패러디인가 싶어 펼쳐 봤더니, 놀랍게도 박웅현의 딸 박연(21)이 쓴 책이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이 책 제목은 감히 아빠의 책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를 패러디했다. 아빠가 인문학을 바탕으로 본질을 꿰뚫는 정직한 광고를 선보였다면, 나는 이런 아빠의 영향으로 인문학적인 교양과 올바른 가치관을 교육받으며, 이를 바탕으로 열심히 나만의 콩을 갈아, 우리 집이 콩가루 집안이 되는 것에 일조했기 때문이다." 박웅현의 광고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져 있으므로, 그의 딸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19살 때 쓴 책이라고 믿기 어렵습니다.

"딸이 중 3때인가, 저와 제 딸 얘기를 회사 후배가 듣더니 육아기를 책으로 내보면 어떻겠느냐고 해요. 그것보다는 딸이 성장기를 쓰는 게 낫겠다 싶어 '한번 써봐라' 했더니 고교 때 서울과 뉴욕을 오가는 비행기 안에서 쓴 책이에요.(그의 딸은 고교를 뉴욕으로 진학했고 현재 컬럼비아대 1학년이다)"

―보통의 한국 부모들과는 매우 다르게 키운 것 같습니다.

"상식적으로 키웠어요. 그게 한국에서 상식으로 통하지 않을 뿐이죠. 예전에 신문에서 '10대라는 형벌'이란 기사 제목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죠. 10대는 인생의 봄날인데, 우리나라에서 10대가 형벌이란 걸 누가 부정할 수 있겠어요. 물론 우리 애도 다르지 않았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서울 중계동에 살았는데 학원 갔다가 밤 11시에 와서 새벽 1시까지 숙제를 하는 거예요. 하지 말라고 하니까 안 하면 처진대요. 다들 그렇게 하니까 말이죠. 그게 바로 선행학습이라는 건데, 제 나이 때 배우면 쉬운 걸 미리 배우려니 괴로운 거죠."

―중계동이라면 이른바 유명학원이 많은 동네인데요.

"그래요. 도봉동에 살다가 학원 다니기 너무 힘들다 해서 이사갔죠. 우리 집에서는 집사람이 '당'이고 나는 '인민'이어서, 당이 결정하면 인민은 무조건 따르는데 아이의 그런 모습을 보니 안되겠더라고요. 아이는 내가 낳았지만 전혀 별개의 유기체예요. 그런데 부모들은 자기 소유물로 생각하죠. 최고의 작품으로 키우려고 하죠."

―그래서 학원을 모두 그만뒀나요.

"아이한테 고르게 했어요.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고, 다니고 싶은 학원만 다니라고 했죠. 이틀 다니고 그만둔 학원이 부지기수예요. 집사람은 계속 따라다니면서 학원비와 교재 환불받고…."

―부인의 반대가 있었겠죠.

"왜 아이를 처지게 놔두느냐, 더 잘할 수 있는 애를 왜 주저앉히느냐, 다들 이렇게 하고 있다, 다른 엄마들 만나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다른 엄마들을 만나겠다. 만나서 설득당하면 따라가겠다'고 했죠. 그렇게 서너 달을 논쟁하다가 집사람이 그러더군요. '당신 말대로 하면 잘 될 것 같아? 애 잘못되면 책임질 거야?' 그래서 '내가 책임질게. 내가 가르칠게' 하고는 역사부터 가르쳤어요. 처음엔 교과서 두 페이지 읽는 데 두 시간이 걸렸어요. 그동안 역사를 문제집으로 공부해 온 아이에게 지도를 펼쳐놓고 맥락부터 가르치려니까 안되는 거죠. 그렇게 두 달을 주말마다 꾸준히 가르치니, 효과가 나타났어요. 내가 도와줄 필요가 없게 된 거예요."

'인문학으로 콩갈다'에는 고교 2학년인 딸과 아빠가 서점에 가서 헬레니즘과 카뮈, 리처드 도킨스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그 딸은 "5층집 아들과 103동 아줌마 딸이 A학원을 다니므로 우리 딸도 A학원을 다녀야 한다"는 한국 사교육의 괴상한 논리에 진저리치고 "공부하다 죽자"라는 학원 광고문구에 절망했었다. 유치원 때 아빠의 뉴욕 연수에 따라갔던 딸은 결국 고교를 미국으로 진학했다.

―한국에서 그렇게 아이를 키우면 무엇이 가장 힘듭니까.

"솔직히 말해서 불안감이죠. 과연 이렇게 키워도 잘 자랄 것인가 하는 불안감. 그렇지만 그것이 제 일이기도 해요. 회사에서도 어떤 판단을 하고 나서 팀장인 내가 불안해 보이면 팀 전체가 흔들려요. 그럴 땐 '내 판단이 옳다'고 믿고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죠. 아이가 중 3 때 제가 회사를 옮기게 돼서, 그 사이 3주간 유럽여행을 다녀왔어요. 그때도 '3주나 학원에 빠지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기에, '인생은 텅 빈 목걸이를 걸고 태어나서 얼마나 많은 진주알을 걸고 죽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진주알은 학원 안 빠진다고 생기는 게 아니고, 고마운 일들, 아름다운 추억 때문에 생기는 거다. 이번 여행에서는 그 진주알을 목표로 삼자'고 했죠. 정말 놀랐던 게, 그 3주 동안 아이 키가 3~4㎝ 자란 거예요. 우리가 얼마나 애를 쥐어짜고 있었나 하는 걸 다시 깨달았어요."

―‘아이는 스스로 진화하는 장난감’이란 표현을 썼죠.

“애가 6학년 때인가, 둘이 여행을 가는데 제가 길을 잘못 들었더니 조수석에 있던 아이가 ‘○○번 도로로 가야 한다고 그랬잖아’ 하고 야단을 치는 거예요. 현기증이 나서 차를 세웠어요. 그리고 아이에게 말했죠. ‘연아, 너 내 무릎에 앉아있던 꼬마였거든? 그런데 지금 네가 아빠를 야단치고 있네? 정말 놀랍지 않니?’ 그러니까 아이는 스스로 진화하는 장난감 맞죠. 그게 부모의 이기심이기도 해요. 그런데 부모들은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고 말하죠. 이기심으로 키운 거죠. 애가 뭐 바란 거 있나요? 태어나게 해주세요 했나요? 즐겁게 낳고 키웠잖아요. 당신이 즐거우려고 키웠으면서 뭘 그렇게 많이 바라요? 솔직히 부모가 무슨 숭고한 뜻으로 애 기르는 것 아니잖아요. 다 부모의 안달복달이고 욕심이에요. 부모의 욕심을 아이에게 투영해놓고 아이를 위하는 척하는 거죠.”

◇Be Yourself(자신있게)

박웅현이 지은 가훈은 ‘자신있게’다. 이것은 제일기획 카피라이터로 뉴욕대에서 연수하던 1997년 지은 것이다. 미국 유치원에 다니던 딸이 “우리 집 가훈이 뭐냐”고 물어 “Be Yourself”라고 대답해 줬고, 한국에 와서는 이것을 ‘자신있게’로 번역했다.

―‘자신있게’ 보다 ‘Be Yourself’가 더 명료하게 들립니다.

“‘Be Yourself’는 제 인생 전반을 결정해 온 슬로건입니다. 나는 아이에게도 후배들에게도 ‘너 자신이 돼라’고 가르칩니다. 딸은 내 유전자를 가져갔지만 다른 유기체예요. 후배들에게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사람은 폭탄이다. 아직 뇌관이 발견되지 않은 폭탄이다. 그러나 모든 유기체는 살아온 족적이 달라서 뇌관이 다르다. 그것을 발견해 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은 뇌관을 한군데로 몰아요. 바로 공부 잘하는 것이죠. 초년 카피라이터 시절에 프레젠테이션 교육을 2박 3일간 받았어요. 이렇게 가르쳐요. ‘정면을 바라봐야 합니다. 짝다리 짚거나 손을 허리에 얹으면 안 됩니다. 광고주 중 가장 중요한 사람과 아이 콘택트(eye contact)가 중요합니다. 3분마다 한 번씩 그 사람을 바라보며, 그래서요 회장님~, 하고 추임새를 넣어야 합니다…’ 완전히 로봇 만드는 거죠. 저는 후배들 가르칠 때 ‘네 스타일이 뭐냐’ 고 먼저 묻습니다. 가장 자기답게 하는 프레젠테이션이 성공합니다.”

―왜 카피라이터를 지망했습니까.

“내 스트라이크 존에 있는 직업 중 하나였어요. 신문기자, 방송 PD, 르포라이터, 소설가, 구성작가, 카피라이터가 그 안에 있었어요. 결국 미디어 콘텐츠를 생산하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대학도 신문방송학과(고려대)를 갔고. 그런데 조선일보 시험 떨어졌잖아요. 하하하.”

―인문학에 탐닉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글쎄요. 나는 클래식이 궁금하고요. 읽으면서 줄 칠 수 있고 좋은 문장이 많은 책이 좋아요. 머릿속에 각인되는 단호한 한 줄 같은 거죠. 그래서 ‘칙릿(Chick Lit·젊은 여성을 주 독자로 삼는 문학)’은 재미없어 못 읽겠어요.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지 않는 이유도 그런 것이고요.”

―독서습관이 따로 있습니까.

“한 권을 정독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줄을 쳐요. 줄 친 문장은 따로 타이핑을 하죠. 자주 보고 싶은 문장은 노트에 적어놓고, 매일 보고 싶은 문장은 사무실 벽에 붙여놔요. 김화영의 ‘행복의 충격’은 줄 친 게 너무 많아 타이핑을 못했어요. 이런 습관이 없었으면 ‘책은 도끼다’도 없었겠죠.”

그는 메모로 가득한 노트를 보여줬다. 노트 맨 앞 장엔 ‘n-39, t-15, 2011/11’이라고 쓰여 있었다. “미국에 다녀와서 새로(new) 쓰기 시작한 지 39번째 노트라서 n-39, TBWA로 옮기고 나서 15권째여서 t-15, 2011년 11월에 쓰기 시작한 노트”라는 뜻이라고 했다.

―‘내 인생의 책’이라고 꼽을 만한 책은 어떤 것입니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 안나 카레니나(톨스토이), 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 죄와 벌(도스토옙스키), 자전거 여행(김훈), 서양미술사(곰브리치)… 너무 많아요. 유홍준의 책들과 김용옥의 초기작들도 그렇죠.”

―광고 창작에 인문학적 통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광고주들이 이해합니까.

“이해 못하면 만나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광고는 기업의 문제해결을 위해 소통하는 것이죠. 기업과 브랜드 공부는 쉬워요. 다 준비돼 있으니까. 그런데 우리가 소통하고 싶은 불특정다수를 공부하는 게 어려워요.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고 눈빛이 달라지는지 공부하지 않으면 우리 일은 무모한 도전이 돼요. 사람들이 어떤 시와 영화에 공감하고 환호했는가, 그 본질적인 흐름이 무엇인가, 그것은 인문학적 통찰이 필요한 일이지 감각으로 해결되는 일이 아니에요.”

―그렇게 만든 광고를 광고주가 막판에 고치라고 하는 바람에 망치기도 하겠죠.

“그렇죠. 그리고 어떤 때는 고치는 데 내가 동의해요. 그런데 동의할 때는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결국 양보해서는 안될 문제였다는 것을 깨닫기도 해요. 그건 또 내 책임이 되죠.”

―자존심을 갖고 만드는 광고를 그렇게 망치면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광고는 내 작품이 아니에요. 광고주 돈으로 하는 광고주의 문제해결이죠. 나는 광고를 작품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고 후배들에게도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해요. 내 작품은 내 돈으로 만들어야지, 왜 광고주 돈으로 하겠어요?”

―실패한 광고도 있습니까.

“많죠. 가장 큰 원인은 광고주를 설득하는 데 실패한 데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예측능력 부족으로 실패하는 경우도 있어요. 이를테면 무슨 스타일을 강조하는 라디오 카피에서 ‘똑같은 옷도 이 남자가 입으면 뉴욕 필이고, 저 남자가 입으면 동남아잖아?’ 하는 게 있었는데, 이게 동남아 비하라고 해서 엄청나게 혼난 적이 있어요. 그런 건 예측을 잘못한 거죠. 그런 예측을 얼마나 오차 없이 하느냐가 나의 일인데 그게 아주 어려워요. 계속 변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모를 때가 많죠.”

―좋은 광고는 무엇입니까.

“시장에서 기능하는 광고죠.”

―나쁜 광고는.

“기능 못하는 광고.”

―어떻게든 기능하면 좋은 광고인가요.

“솔직히 말하면 그래요. 그런데 단기적으로는 기능하면서 장기적으로 피해 주는 광고가 있어요. 제품마다 그 기준이 다 다르긴 한데, 저는 우루사 ‘간 때문이야’는 잘 만든 광고라고 생각해요. ‘간 때문이야, 우루사 주세요’ 이게 되거든요. 그런데 이를테면 ‘집 나가면 개고생’은 단기적으로는 히트쳤지만 장기적으로는 부정적일 겁니다. 브랜드가 고급스러워 보이지 않거든요. ‘감자가 잘 자라야 포카칩’ 이것도 괜찮아요. 아무런 피해를 줄 게 없거든요.”

―그런 카피를 쓴 적도 있습니까.

“물론 쓴 적 있죠. 이를테면 ‘잘 자, 내 꿈꿔’는 인문학과 거의 상관이 없죠.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도 별로…. 그렇지만 나는 가치지향적인 광고를 만들려고 해요. 그런 광고가 장기적으로도 기능한다고 보거든요. 이를테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아디다스의 ‘임파서블 이즈 나싱(Impossible Is Nothing)’과 그 의미가 비슷한데, 이 광고는 아디다스를 생각있는 브랜드로 만들어줬죠.”

◇박웅현과 스티브 잡스

TBWA 사보 ‘뜨브와’에는 종종 박웅현과 관련된 사원들의 글이 실린다. 이 글들을 모두 검색해보니 회사 내에서 박웅현의 이미지는 ‘존경’, ‘창의력’, ‘인문학’ 같은 단어로도 표출되지만, 차갑거나 무섭거나 굳은 표정 쪽도 꽤 있었다. 그는 특히 시간 약속 지키지 않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데, “10시 3분은 10시가 아니다”라는 말이 꽤 유명하다.
“신입사원 때 10시에 회의한다고 하면 10시에 아무도 안 와요. 30분 지나면 하나 둘씩 들어와서 잡담하다가 밥 먹으러 가요. 그럼 10시 회의가 없어진 거예요. 그래서 회의는 2시에 해요. 회의가 늦어지니까 야근하고, 일 많다고 술 마시고 다음 날 머리 아프다고 10시 회의 또 못 들어와요. 그러면 또 야근해요. 이게 뭐예요.”

―“좀 웃어주세요”, “사람냄새 맡게 해주세요” 하는 요청이 꽤 있던데요.

“나는 일이 떨어지면 앞밖에 보지 못하는 육식동물이에요. 쉽게 말해서 오지랖이 아예 없어요. ‘잘 지내?’, ‘밥 먹었어?’ 이런 말을 못해요. 궁금하지 않은 걸 물어보는 건 어색하거든요. 그게 못된 성격이에요. 팀장이면 그런 걸 해야 하는데…. 누가 ‘올해 좋은 일만 생기세요’라고 인사하면 이렇게 대답해요. ‘그런 인생은 없어. 그런 걸 바라면 안돼.’ 그러니까 누가 좋아하겠어요. 하하하.”

―스티브 잡스 평전을 읽었겠죠.

“물론이죠.”

―그를 존경합니까.

“아니요. 나는 존경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좋아하고, 부러워하고, 멋있다고 생각하죠, 스티브 잡스는. 출판사에서 스티브 잡스 평전을 읽고 한 줄로 써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쓴 게 ‘그는 천재가 아니다. 집요할 뿐이다’예요. 그의 집요함이 뭔가를 만들어 냈죠. 나는 늘 ‘세상은 천재들로 가득하다’고 말해요. 다만 그들이 천재임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뇌관이 어디 있는지 찾아 폭발시켜야 하죠. ‘Be Yourself’가 돼야 하는 거예요. 누가 자신의 뇌관을 집요하게 놓치지 않고 가느냐 하는 문제예요. 스티브 잡스가 그런 사람이었죠.”

―스티브 잡스는 천재보다 괴짜 쪽인 것 같은데요.

“맞아요. 괴팍한 사람이죠. 나는 그의 ‘현실왜곡장’을 이해해요. 나한테도 그런 면이 있거든요. 뭔가 확신이 들지 않을 때, 나의 판단을 완전히 주관화해서 밀고 나가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추진력이 안 생겨요. 집사람이 ‘애 그렇게 키워서 책임질 수 있어?’ 했을 때, ‘책임질게’라고 했던 것, 광고 시안이 여러 개 있고 광고주와 의견이 다를 때 ‘A안으로 하시죠’가 아니라 ‘A안이 맞습니다. 이걸로 가야 해요’라고 밀어붙이죠. 리더에겐 그런 현실왜곡장이 필요해요. 특히 광고처럼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에겐 꼭 필요합니다.”

―스티브 잡스의 말 중 어떤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까.

“비틀스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회의할 때도 그 이야기를 자주 해요(스티브 잡스는 비틀스가 노래를 녹음하며 수없이 수정하는 것을 설명하며 ‘그들도 그저 보통사람일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대단한 완벽주의자여서 끊임없이 고치고 또 고쳤다. 나는 여기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평전은 스티브 잡스가 마지막으로 내놓은 완결형 제품이에요. 자기가 죽으면 다들 자기 이야기를 쓸 텐데, ‘너희가 뭘 안다고 나에 대해서 써?’ 하면서 월터 아이작슨을 작가로 부른 것이죠.”

박웅현은 스스로의 표현대로 ‘육식동물’처럼 일하면서도 일상(日常)의 가치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 그가 만든 광고들과 그가 쓴 에세이에 그 가치가 무심히, 그러나 켜켜이 배어 있다. 그의 사무실 한쪽에 그가 손으로 써붙인 김사인의 시 ‘조용한 일’이 있었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철 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그는 “광고를 작품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의 광고를 명작으로 받아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