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울서 320㎞, 기록 15,207,200장 보관된 문서고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범곡리. 서울에서 320㎞ 떨어진 한적한 이곳에 빨간 벽돌로 이뤄진 지상 1층 서울시 건물이 하나 있다. 청도군청 바로 앞에 자리 잡은 이곳은 '서울특별시 문서 보존소', 이른바 '청도문서고'라 불린다.

이 건물은 지난 1994년 1573㎡(476평)의 땅에 지상 1층·지하 3층 연면적 2015㎡(610평)로 건립됐다. 각 구와 시에서 보낸 지적도, 시유재산, 지하철 노선도 등 각종 업무 관련 서류 7만6036권(1권은 A4 용지 200장 이상)과, 이 서류를 사진으로 찍은 마이크로필름 8001롤을 보관하고 있다.

서고(書庫)로 내려가니 철제 책장이 빽빽하다. 일반 도서관 서고와 비슷하지만, 열람이 아니라 보존이 목적이므로 책장만 비좁게 세워놓았다. 상자 안에는 누렇게 바랜 종이 위에 손으로 쓴 옛 문서가 즐비했다.

서울시 공문서 중 가장 오래된 '영등포 인감대장'(1914년 7월)도 있고, 길이가 12m에 달하는 지하철 1호선 평면도(1974년)도 있었다. 청계천 복원 공사 당시엔 옛 원형을 수록한 문서를 찾겠다며 시청 직원이 대거 몰려온 일도 있었다.

대부분 낡은 문서인 탓에 온도·습도 유지가 가장 중요하다. 자동 항온·항습기를 통해 섭씨 20도·습도 50% (일반 문서), 15도·40%(마이크로필름)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가 생기면 벨이 울리고 직원이 내려가 점검해야 하기 때문에 24시간 당직 체제가 필수다. 한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어 "전체 회식은 한 번도 못했다"는 게 9년째 이곳에서 일하는 신영오(53) 주무관 말이다. 모두 6명이 '청도문서고'를 지키며 '오지(奧地)' 근무를 자원한 사람들이다. 벽은 3중이어서 웬만한 수해(水害)에도 끄떡없고, 창은 방범을 위해 쇠창살로 막아 놓았다.

'청도문서고' 역사는 1994년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8년 북한 무장 공비들이 청와대를 급습한 '1·21사태'가 터지자 당시 정일권 국무총리가 중요한 역사·행정 자료를 분산할 필요성을 제기했고, 이에 청도 출신 남봉진 서울시 부시장이 이곳을 천거했다. 1968년 9월엔 청도군청 내 166㎡ 공간에 문서 보존소를 설치했다가 1994년에 확장 신축해 지금에 이르렀다.

전화(戰禍)에 대비, 중앙과 지방 여러 사고(史庫)에 분산 보관하던 조선왕조실록의 사례를 참고했다. 청도가 해발 870~1240m에 이르는 남산, 운문산, 억산, 가지산 등 '영남 알프스'로 둘러싸여 6·25전쟁 당시 피난처 역할을 했던 곳이라 제2 문서고를 만들기에는 최적이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일하는 직원들은 산더미 같은 옛 서류를 정리해 목록화하는 작업이 주요 일과다. 손으로 쓴 글자라 악필(惡筆)이면 해독에 적잖이 애를 먹을 뿐 아니라, 모르는 한자가 나와 옥편을 한참 뒤질 때도 있다. 덕분에 김윤희(42) 주무관은 이제 희귀 한자 전문가가 다 됐다. 2009년부터 이 문서고에 있는 서류를 일일이 스캔해 디지털화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앞으로 10년 정도 더 걸리는 공정이다.

직원들이 문서보다 더 중요하게 취급하는 자료는 자기 테이프 형태로 저장된 서울시 백업(backup) 서버다. 문서고 한편에 자물쇠로 잠긴 커다란 철제 캐비닛이 있고, 그 안에 다시 비밀번호로 봉인한 철가방이 있는데, 그 안에 들어 있다. 1년에 1~2차례씩 시 직원이 직접 와 교체하곤 하는데 신 주무관은 "우리도 못 만지게 한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 중 제2 문서고를 운영하는 데는 서울시가 유일하다. 1년 운영비는 직원 인건비를 제외하고 연 7000만~9000만원 수준. 누구나 와서 원하는 문서를 볼 수 있지만, 워낙 멀다 보니 지난해 17명, 2010년 15명, 2009년 39명 등 한 달에 기껏 1~2명만 들른다. 현재 수용 능력(9만7000권)의 78%가 차 있어, 조만간 더 문서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서울시는 가까운 경기도 부근으로 문서보존소를 옮기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사업비가 400억원 이상이 든다는 계산이 나와 아직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