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 추격전 등 굵직한 장면들, 영화관서 틀어도 손색없죠

TV조선 블록버스터 드라마 '한반도'의 이형민(47) 감독은 '영상 스타일리스트'로 불린다. KBS 시절 '미안하다 사랑한다'(2004) '상두야 학교가자'(2003) 같은 히트작으로 두터운 팬층을 확보했다. 그가 남북대치와 한반도 통일 과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특별한 사랑 이야기를 어떤 영상으로 빚어낼지가 관심거리다. 지난 1일 밤 서울 이촌동 녹음스튜디오에서 만난 이 감독은 점퍼에 모자를 눌러쓰고 밤샘 작업에 한창이었다. 그는 "어떤 작품보다도 육체적으로 고되지만 즐겁고 재미있다"며 빙긋 웃었다.

―100억원 넘는 제작비가 들어간, 첫 블록버스터 연출이다.

"조연출 시절 대하사극·주말드라마·일일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를 많이 경험해 낯설진 않다. 이번에는 연기파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게 돼 새로운 즐거움이 있다. 한국 현대사를 다룬다기보다는 역사와 함께 하는 개인의 이야기로 만들고 싶다."

―대작 드라마라 스펙터클한 장면이 많고, 촬영일정도 여유가 없었을 것 같다. 현장 분위기가 어땠나.

"현장 분위기가 좋아야 작품이 잘 나온다는 믿음이 있는데 이번엔 정말 좋았다. 착각일 수도 있지만.(웃음) 서명준 역의 황정민씨는 몸을 사리지 않았다. 메탄하이드레이트 기지 총격전 도중 유리 파편이 발에 박혀 피나는 장면을 찍을 때 보통 발밑에 밑창을 신고 살구색 스타킹을 신지만, 일부러 맨발로 뛰었다. 바닥이 거칠어 엄청나게 아팠을 거다. 림진재 역의 김정은씨는 누나 역을 자처해 신인 배우들에게 세세하게 조언해주고, 인간적으로도 다독여줬다. 신인들은 자기 촬영날이 아닌데도 앞다퉈 현장을 찾아왔고, 스태프들도 모두 자기 작품처럼 임했다. 영화촬영에 쓰는 값비싼 장비들로 찍어 영화관에서 바로 틀어도 될 만큼 화질이 좋다."

-루마니아 촬영 분량이 상당하다.

"총격전과 차량 추격전, 수중 장면, 비행 등 굵직굵직한 장면들을 루마니아에서 찍었다. 산악 추격 장면을 찍은 군사시설은 독재자 차우셰스쿠 시절 해발 1700~2000m 지대에 만든 요새로 가는 길이 세계에서 가장 험한 길 10곳에 포함돼 있다더라. 촬영날 눈까지 와 정말 아찔했다."

―남남북녀 커플인 서명준·림진재의 멜로 부분을 어떻게 그릴지 궁금하다.

"미니시리즈에서 보여줬던 젊은 사랑과는 다른, 헌신적이고 성숙한 사랑이다. 둘은 러시아 유학시절 만나 메탄하이드레이트 연구 책임자로 재회한다. 남북정세가 화해에서 대결로 급변하면서 이뤄질 것 같던 사랑도 장벽에 가로막힌다. 림진재가 (통일한국 영부인이 되면서) 청와대로 들어간다 해도 순조로울 리 없다. 사랑이 역경을 이겨내는 스토리에 맞춰 힘 있는 영상들을 많이 준비했으니 기대해달라."

―극 중 림진재가 북한 말투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것 아닌가.

"윤선주 작가와 사전에 합의된 부분이다. 윤 작가가 집필을 위해 역대 통일부 장관 6명을 만나는 등 준비를 정말 꼼꼼히 했다. 그래서 알게 된 게 북한 고위층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억양이 강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평양이나 개성말은 서울말과도 비슷하다고 한다. 억양 때문에 집중해야 할 곳에 집중 못하는 것도 피하고 싶었다."

―한창 촬영 중이던 작년 말 김정일이 사망했다. 드라마에서도 북한 지도자가 정변으로 목숨을 잃고 격랑에 빠져든다는데….

"소식을 듣고 '참 희한하다'는 생각 정도만 했다. '한반도'는 그럴 법한 상황을 다룬 드라마이지 사실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블록버스터와 차별화되는 '현실감'이라는 장점이 있다. 정치 드라마도 아니고 팩트(fact)를 철저히 좇지도 않지만, 허황되지 않고 땅에 발을 붙인 이야기다. 통일이라는 주제도 관심 있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어쩌면 이 드라마에서 다룰 통일의 과정이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바람직한 통일 모델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