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도 거품? 990원 착한 아메리카노 불티

최근 립스틱 효과를 겨냥한 다양한 마케팅 전략이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한 가지 제품으로 두 가지 이상의 효과를 보게 하는 것. 뷰티업계의 코스메슈티컬(Cosmeceutical) 화장품을 꼽을 수 있다. 코스메슈티컬은 화장품(Cosmetic)과 의약품(Phamaceutical)의 합성어다. 의사가 연구·개발에 참여하거나 제약회사가 생산한 화장품을 말한다. 불황으로 비싼 피부관리를 받기가 부담스러운 여성들이 이런 화장품으로 '피부관리 프로그램을 받은 듯한 효과'를 얻으려는 심리를 이용한 것.

경기 침체가 본격화한 2009년 이후 코스메슈티컬 시장은 매년 15%씩 성장하고 있다. 키엘의 '울트라 훼이셜크림'은 전 세계적으로 15초에 1개씩 팔리고, 차앤박화장품의 고농축 영양 앰풀 '프로폴리스 힐링 솔루션'은 지난해 매출이 10배 이상 늘었다. 패션업계에서도 재킷 하나가 조끼·내피 등으로 분리돼 '스리 인 원(3 in 1)'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제품이 인기다.

◇의류회사가 자동차 업체와 공동 마케팅

서로 다른 업종끼리 연대 마케팅을 펼치거나 기존 방문판매 조직을 활용해 타사 제품을 판매하는 마케팅 시도도 잇따르고 있다.

"990원짜리 아메리카노 커피 주세요."

외식업체 M사는 지난해 11월 서울시내 지하철 27개 역사(驛舍) 안에 테이크아웃 형태의 커피전문점을 열었다. 이곳에서 파는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 값은 990원. 일반 커피전문점의 3분의 1 수준이다. 카페라떼와 카푸치노도 1990원으로 저렴하다. 회사원 김모씨는 "4000원짜리 커피와 비교해도 맛이 손색이 없어 출근길에 자주 사 마신다"고 말했다.

이 커피전문점은 요즘 하루 매장 매출이 평균 200만원을 넘는다. 유동인구가 많은 종로·명동 등지의 매장은 하루 매출이 400만원에 육박할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테이크아웃 전문점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커피 원두는 고급을 쓰는 대신 인테리어 비용과 인건비는 대폭 낮췄다"면서 "모두 직영점으로 운영해 유통마진도 줄였다"고 말했다.

불황에도 소비자 심리를 잘 파고들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 최근 경기 침체에 대응해 가격 파괴형 반값 상품이나 핵심 기능 외에 부가 기능을 최대한 줄인 실속형 제품으로 소비자 지갑을 여는 '불황 마케팅'이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싸게 팔자" 렌털에 가격 파괴까지

최근 이마트는 줄어드는 가전 매출 감소를 극복하기 위해 냉장고·TV 등 가전제품을 빌려주는 서비스를 도입했다. 판매가 139만원인 42인치 LED TV를 고객이 한 달에 5만2000원씩 내고 빌려쓴 뒤 3년 후에는 소유할 수 있도록 한 것. 이마트 관계자는 "금융비용(할부이자)을 감안하면 원래 일시불 가격보다 48만원쯤 비싸지만 당장 목돈이 없는 소비자에게는 유용하다"고 말했다. 이런 렌털형 마케팅 전략은 대형 가전제품 구매에 부담을 느끼는 젊은 신혼부부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불황기의 대표적인 마케팅 수단인 '가격 파괴'도 빠르게 확산 중이다. 지난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쇼핑몰에서는 '반값 TV'가 출시되자마자 매진됐다. 최근엔 가전 양판점과 편의점도 가세했다. 전자랜드는 반값 노트북을 선보였고, 훼미리마트는 지난달 설 선물세트 450개를 최대 50% 할인해 불티나게 팔렸다.

불필요한 기능을 줄여 가격을 낮추는 이른바 '디버전스(divergence)' 제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디버전스는 다양한 기능을 합친 컨버전스(융합)와 반대 개념. 본래 기능에만 충실하자는 의미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1일 쏘나타 하이브리드의 '스마트 모델'을 선보였다. 연료절감형 하이브리드 차량의 성능은 그대로 유지한 채 가죽 스티어링 휠과 자동변속 손잡이 등 비싼 옵션 부품을 빼 판매가격을 110만원 낮췄다.

◇코스메슈티컬 화장품의 약진

1930년대 대공황기 서구 경제학자들이 만들어낸 용어 가운데 '립스틱 효과'란 것이 있다.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값비싼 화장품 판매가 줄고 립스틱 같은 저가 미용품 매출은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불황기에 돈을 최대한 아끼면서 품질도 만족할 만한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의류브랜드 갭(GAP)은 최근 자동차회사 닛산과 손잡고 한국에서 독특한 이벤트를 진행했다. 행사기간 전국 갭 매장에서 상품을 구입하는 고객에게 추첨을 통해 주말에 닛산의 큐브 승용차를 시승할 수 있는 티켓을 제공했다. 거꾸로 전국 12개 닛산 전시장을 찾아 큐브를 시승하는 고객 2000명에게는 갭 20% 할인 쿠폰을 줬다. 큐브 계약고객에게는 갭 패션 아이템을 공짜로 제공했다. 김선혜 신세계 인터내셔날 마케팅팀장은 "이(異)업종 간 공동마케팅은 고객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주고 비용 대비 효과도 높다"고 말했다.

기존 판매망을 활용해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하기도 한다. 웅진코웨이는 1만3500명에 달하는 방문서비스 전담조직 '코디'를 활용해 타사 제품을 판매하는 '플랫폼 비즈니스'를 론칭했다. 정수기·연수기 등 기존 웅진코웨이 물품을 판매·관리하는 영업사원(코디)들이 딤채 김치냉장고, 필립스 면도기, 테팔 전기그릴, 다이슨 청소기 등 다른 회사 제품도 함께 판매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