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주식마저 'CEO 리스크(경영에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이 회사에 타격을 주는 것)' 불거져

지난 3일 김승연 회장 등 경영진의 배임 사건을 발표한 한화그룹의 지주회사 격 한화는 사건 발표 후 첫 거래일인 6일 전날보다 4.6% 하락하며 장을 마쳤다. 이날 한화 관련주도 대부분 하락하며 약세를 보였다.

한화그룹, SK그룹 일부 계열사 등 대그룹이 차례로 경영진의 횡령·배임 사건에 말려들면서 주식시장에서 다시 한 번 'CEO 리스크'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CEO 리스크란 대표이사(CEO)나 최대주주와 같이 기업의 경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이 말썽을 일으켜 회사에 직·간접적인 타격을 주는 것을 말한다.

◇대기업 더는 안전지대 아니다

그동안 지주회사나 대형 그룹주들은 대부분 CEO 리스크에 대해선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이미 기업들이 세계적 기업으로 자리를 잡은 상황이라 크게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이었다.

'CEO 리스크'가 불거졌던 SK그룹 일부 계열사 관련주나 금호석유화학 관련주가 오히려 잠재적인 불안요소가 없어질 것이란 기대감에 상승하는 것을 지켜봤던 일부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대기업에 CEO 리스크 터지면 추격 매수해라'와 같은 얘기까지 나돌았다.

그러나 최근 '설마' 했던 일이 발생했다. 한화의 경우 경영진의 배임 금액이 자기자본의 2.5%가 넘는 3.9%에 달해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 여부에 대한 검토까지 이뤄졌다. 자칫 매매거래가 정지될 수도 있다는 소식에 한화의 주주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다행히 거래소가 '급행'논란을 겪으면서까지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려 일단 '진화'에 나섰지만 결국 그룹 전체 주가가 하락세를 탔다.

국내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대기업에서까지 CEO 리스크가 불거지면서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애널리스트는 "대기업조차도 일부 횡령사건으로 상장폐지를 당할 위험이 있다는 점이 이번 해프닝에서 증명됐다"며 "좀더 진지하게 CEO 리스크를 생각해 투자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코스닥, 횡령·배임 절반이 퇴출?

CEO 리스크가 더욱 심각한 곳은 중·소형주들이 많이 속해 있는 코스닥 시장이다. 코스닥 상장 기업 중에서는 소형 기업이 많다 보니 한 번의 횡령·배임 건으로 회사 자체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부터 6일 오전까지 코스닥 시장에서 현직이나 전직 경영진이 횡령·배임으로 인해 법원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은 기업은 총 6곳. 이 중에서 절반에 달하는 3개 기업이 증시에서 쫓겨났다. 지난해 코스닥 시장에서 상장폐지된 넥서스투자는 전(前) 최대주주가 연루된 횡령·배임 사건이 불거진 다음 날 하한가로 추락했다. 동산진흥과 클라스타도 비슷한 이유로 상장폐지됐다.

CEO 리스크는 경영진이 법원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기 이전 단계에서부터 회사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같은 기간 코스닥 시장에서 경영진이 연루된 횡령·배임 혐의가 발생했다고 공시한 기업은 총 84곳. 이 중에서 61개 기업이 코스닥 시장에서 퇴출당했다. 최근에도 에이원마이크로와 그린기술투자, 에코솔루션 등이 CEO 리스크 등이 불거지면서 상장폐지됐다.

거래소 기업분석팀 관계자는 "일단 코스닥 기업의 경우에 심사를 통해 퇴출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완전자본잠식 또는 감사의견 거절과 같은 형식적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서 상장폐지가 된 사례가 많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