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총격·추격 없는 담백한 지적스릴러

스파이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사진>'는 그 긴 제목만큼이나 복잡한 상황 설정으로 미로를 헤매는 듯하다. 냉전이 한창인 1970년대 영국 비밀 정보국(MI6) 내 이중간첩을 색출하는 고전적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 흔한 총격전이나 추격 장면 하나 없다. 대신 안개 자욱한 런던 거리를 걷는 듯한 차분한 전개와 절제된 감정·화면 표현으로 지적 스릴러의 묘미를 보여주고 있다.

뱀파이어 영화 '렛 미 인'(2008)으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토머스 알프레드슨 감독이 영국 작가 존 르카레의 동명(同名) 소설을 영상으로 만들었다. 원작 자체가 1960년대 영국을 충격에 빠뜨렸던 케임브리지대 출신의 엘리트 이중간첩 사건을 소재로 삼은 스파이 소설의 걸작.

영국 정보국 국장 컨트롤(존 허트)은 현장 요원인 짐(마크 스트롱)에게 조직 내부에 침투한 소련 스파이를 찾아내라는 비밀 임무를 맡긴다. 그러나 이를 눈치챈 내부 스파이의 조작으로 헝가리에서 벌인 작전은 실패하고 짐은 총격을 당한다.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 사임한 컨트롤은 얼마 후 세상을 떠나고, 은퇴한 전직 요원 조지 스마일리(게리 올드먼)는 영국 정부로부터 소련 스파이를 색출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정보국 직원을 상대로 스파이를 가려내는 비밀 작전에 착수한 끝에 어제의 동료였던 최고위 간부 4명이 이중간첩 후보로 압축된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란 암호명으로 각각 불리는 이들의 행각이 하나하나 밝혀지면서 내부의 적을 찾는 퍼즐은 하나씩 풀려나간다. 내부 스파이를 조정하는 얼굴 없는 적, 소련 KGB 고위 장교 '칼라'와 지적 대결도 펼쳐진다.

영화에는 '두더지(이중간첩)' '서커스(영국정보부)' 같은 그들만의 용어가 그대로 노출되니 맥락을 잘 살펴야 한다. 고도의 지적 게임을 벌이는 게리 올드먼은 이 작품으로 26일 열리는 8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킹스 스피치'의 콜린 퍼스를 비롯, 톰 하디, 베네딕트 컴버배치 등도 개성 있는 연기를 선보인다. 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 가.

[이것이 포인트]

#장면
조지 스마일리가 영국 정보국에 침투한 이중첩자 후보 4명의 사진을 체스 말에 붙인 후 응시하는 모습

#대사
"우리는 서로 상대방 체제의 약점을 찾는 데 인생을 바쳤지. 이제 알 때가 되지 않았나, 그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을."(스마일리가 소련 요원의 전향을 설득하며)

#해외평
"심장박동 같은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와 당신을 긴장과 스릴 속으로 밀어넣는다."(뉴욕타임스)

#이런 분들 보세요
할리우드식 액션에 질려 세련되고 정교한 스릴러에 목마른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