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영 "내 캐릭터가 좀 세죠"

이나영(33)을 인터뷰하러 갔다가 도리어 당하고 말았다. "시나리오 고르는 기준이 뭐냐"고 하자 "내가 맡은 역할 중 무엇이 가장 좋았느냐"고 되물었고, "무슨 공상을 그렇게 하냐"고 묻자 "다른 사람의 공상도 궁금하다. 말해달라"고 했다.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계속 물어보는 바람에 결국 그에게 무슨 공상을 하고 사는지 말해줘야 했다. 이나영은 '신비주의'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세상과 사람과의 교감에 적극적이었다.

7일 서울 삼청동에서 유하 감독의 '하울링'(16일 개봉)에 출연한 이나영을 만났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 파트너 상길(송강호)과 함께 사람을 물어 죽이는 늑대개와 그에 얽힌 미스터리를 수사하는 신참 형사 은영 역을 맡았다.

―오토바이 타는 여형사 역할은 의외다.

"구미 당기는 요소가 아주 많았다. 일단 액션 신이 있는 영화를 원했고, 유하 감독과도 작품을 하고 싶었다. 송강호 선배님이 먼저 캐스팅됐는데 그것 때문에 사심을 갖고서 시나리오를 읽었다. 그러곤 놀랐다. 여자 형사가 사건의 중심이라서. '앞으로도 이런 작품 받을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액션에 대한 갈망이 있었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 빌'과 앤젤리나 졸리가 나온 액션 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때그때 인상 깊게 본 영화나 배우에 따라 하고 싶은 게 달라진다. 토드 헤인즈의 '아임 낫 데어'에서 밥 딜런 역할을 맡은 케이트 블란쳇을 보고서 '아빠는 여자를 좋아해'의 (트랜스젠더) 주인공에 관심이 생기는 식이었다."

―오토바이 타는 장면이나 늑대개(사실은 잡종견)와 호흡을 맞추는 게 힘들진 않았나.

"오토바이 타고 달리는 장면을 촬영하다가 차량과 부닥쳐 몸이 날아갔다. 그러고 보니 비몽 때도 다쳤네. 아직 아마추어인가 보다. 개랑은 처음부터 사이가 좋았다. 촬영 전에 친해지려고 찾아갔는데 뭐가 통했는지 나한테 계속 왔다."

―작품 선택 기준은.

"'넌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니'라고 묻는 것 같다. 일단 난 나한테 어울리는 걸 하고, 당시의 심리상태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영어완전정복'의 엉뚱한 캐릭터나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의 트랜스젠더 캐릭터도 다 나랑 어울린다. 대중의 반응은 극과 극이다. '쟤 왜 저래'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내가 좋아서 하고, 그 마음이 계속된다면 대중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 같다. 말해놓고 보니 내가 연기한 캐릭터들이 세긴 세네…."

―흥행 작품은 별로 없다.

"나는 다 흥행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출연했다. 김기덕 감독의 '비몽'이나 김성수 감독의 '영어완전정복'도 얼마나 재밌었는데.(웃음) 흥행에 부담을 느낄 때도 있었고 주위에서 관객 숫자가 중요하다는 얘기도 많이 한다. 그런데 흥행할 만한 작품을 누가 알 수 있나. 그런 작품만 찾아다니다가 흥행도 안 되고 내가 원하는 연기도 못하게 되면 더 나쁜 거 아닌가?"

―무슨 공상을 주로 하나.

"용의 해라 그런지 용 생각을 많이 한다. 특히 흑룡 생각. 어딘가 용이 있을 것만 같고, 흑룡이라면 진짜 멋질 것 같다."

―연기가 싫었던 적은 없나.

"처음에 MC 보고 그랬을 때는 나랑 잘 안 맞아서 좀 힘들었다. 그러다가 '후아유' 출연하면서 연기와 캐릭터 욕심이 생겼다. 진부한 얘기지만, 이제 연기가 삶이 됐다. 매번 만족하지 못해 계속 욕심도 나고 어렵기도 하다. 한 영화에서 우는 연기를 잘 해냈다고 다음 영화에서 똑같이 할 수는 없다. 남들이 몰라봐도 내가 질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