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신문화의 탄생'] [11] 대회 주관하고 심판까지 본 '운동기자' 이길용

"제2회 선만(鮮滿) 빙상선수권 대회는 25일 오전 11시부터 국경 압록강철교하에서 열리엇는데, 예년보다 조선인의 출장선수가 만흐며 일기가 매우 따듯하여 강의 좌우 연안에 거주한 조선사람이 무려 수만을 헤아릴만큼 '링'의 주위는 인해(人海)를 이루엇다.…조선사람의 입선이 잇슬때마다 동포의 박수소래는 자못 쓸쓸한 국경 강변의 일대를 요란하게 흔들고 마랏다…."(1925년 1월 27일자)

조선일보 사회부 '운동기자' 이길용(李吉用)이 쓴 최초의 기명 '운동' 기사다. 그는 이튿날부터 대회 참관기를 '파하생(波荷生)'이란 필명으로 '압강종전기(鴨江從戰記)'란 제목을 붙여, 7회에 걸쳐 연재했다.(1월 28일~2월 3일자) '파하'는 이길용의 호.

1921년 9월 동아일보 대전지국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한 이길용은 1924년 9월, 송병준(宋秉畯)으로부터 조선일보를 인수한 신석우(申錫雨)를 따라 조선일보에 입사했다. '천리구' 김동성(金東成), '신문의 귀재' 이상협(李相協), 민태원(閔泰瑗), 김형원(金炯元), 유광렬(柳光烈) 등과 함께였다. 이후 이길용은 본격적인 '운동기자'의 길로 들어선다.

신석우의 '혁신 조선일보'는 '면목 일신'을 위해 '변장기자 탐방'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그중 하나가 이길용이 주도한 '가로쓰기 운동경기'란 신설.(신동아 1934년 3월호) 사회면 기사의 하나로 지면 여기저기 흩어져 실리던 체육기사를 1924년 10월 3일자부터 한곳에 모으고, 특히 아라비아 숫자가 많은 운동기사를 가로쓰기로 편집, 지면에서 한눈에 찾아볼 수 있도록 한 것.

'체육계 마당발' 이길용은 '기자'이면서 동시에 조선 운동계의 '실세'로, 각종 대회를 주관하고, 심판을 보는가 하면 기록원으로도 뛰었다. 함용화·손효준·김정식 등 조선 야구인이 대거 선수로 뛰던 일본 실업 야구단 보총(寶塚)팀의 환영식을 주도하면서, 그는 "참석을 원하는 사람들은 '조선일보 이길용'군에게 연락"하라고 '기사'를 썼다.(1925년 6월 27일자)

1926년 새해 '운동기자 파하생' 이름으로 12회에 걸쳐 연재한 '스폿스계의 회고'는, 1925년 한 해 동안 벌어진 모든 종목의 경기를 정리했다.(1월17~29일자) 이듬해도 1926년의 경기들을 10회에 걸쳐 리뷰했다.(1월10~29일자) 이 기사엔 필자 이름이 없었지만, 필자 사정으로 연재가 잠시 중단됐던 점을 사과하면서 '파하'란 필명을 밝혀(1월 25일자), 이길용이 쓴 것임을 보여준다. 이 같은 스포츠 연재물은 다른 신문들도 단골 메뉴로 삼으면서, 한국 체육사의 기본 토대를 이룬다.

당시 최고의 성악가인 안기영(安基永)과 배재학당 동기인 그는 악계(樂界)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일본 유학 중인 홍난파가 "조선의 스폿스계와 악계를 위하야 애쓰시는 형님의 생각이 공부하기에 여념이 업는 나의 뇌리에도 각금각금 떠오름니다"며, 일본 음악계 현황을 자세히 '보고'할 정도였다.(1927년 6월 23~26일자)

한국체육기자연맹은 그의 공로를 기려 1989년 '이길용 체육기자상'을 제정, 매년 수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