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몰린 공모형 PF사업] 비싸게 산 부지가 걸림돌… 74兆규모 사업 대부분 올스톱

충남 아산신도시에 추진 중인 '펜타포트' 복합단지. 이곳은 전체 부지면적 5만8000㎡ 중 3분의 2 이상이 허허벌판으로 방치돼 있다. 2005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땅을 대고 SK건설 등 민간기업이 1조2000억여원을 투입해 아파트·오피스·백화점 등이 결합된 랜드마크 단지를 짓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했다. 당초 2010년말까지 개발을 끝낼 계획이었지만 7년이 지난 현재 지상 66층짜리 초고층 아파트 3개동이 작년 말 완공됐을 뿐 나머지 사업은 사실상 중단됐다. 아파트 입주예정자인 이모씨는 "당초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들어온다고 홍보했는데 사기당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경기 호황기인 2006~2007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며 공공기관과 민간 사업자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던 이른바 '공모형 PF(프로젝트파이낸싱)' 사업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2001년 처음 도입된 공모형 PF사업은 LH 등 공공기관이 땅을 대고 민간이 출자한 PFV(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가 사업을 시행하는 민관 합동 개발방식이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추진 중인 공모형 PF사업은 27개, 사업비는 74조원을 넘는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로 사업성이 나빠지고 자금조달마저 막히면서 용산역세권개발, 판교 알파돔시티 등 일부를 제외하면 사실상 올스톱된 상황이다.

◇사업성 악화, "너무 장밋빛이었나"

공모형 PF사업은 일반 부동산 PF와 달리 대부분 사업비가 1조원을 넘는 대형 프로젝트다. 이 때문에 부동산 경기가 좋던 2006~2007년 건설사는 물론이고 금융회사들까지 군침을 흘리며 사업권을 따내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공모형 PF는 2008년 말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곳곳에서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대부분 자기자본이 아닌 금융권 PF로 땅값을 내려고 했는데 당초 파이낸싱을 약속했던 금융기관이 돈을 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 침체로 수익성이 떨어져 회수 여부가 불투명한 사업에 수천억원씩 빌려주기는 어렵지 않으냐"고 말했다.

현재 LH가 민간기업과 공동으로 추진 중인 공모형 PF사업만 모두 10개. 총 사업비는 14조원을 웃돈다. 이 가운데 경기 용인 동백지구 등 2개 프로젝트만 준공됐다. 경기 화성 동탄 메타폴리스, 아산 배방 펜타포트 등 4곳은 공사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판교 알파돔시티 등 나머지 4개 사업은 4~5년째 표류하고 있다.

공모형 PF사업이 좌초 위기에 몰린 데는 과도한 땅값이 주범으로 꼽힌다. 공모형 PF를 추진하는 공공기관 대부분이 땅을 팔아 재무구조를 개선하려다 보니 땅값을 높게 부르는 사업자를 선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 건설사들도 사업성을 따지기에 앞서 "우선 사업권부터 따놓고 보자"며 '묻지마 투자'에 나섰다. 실제로 경기 판교 알파돔시티의 경우 3.3㎡당 감정가격이 3300만원이던 땅이 배 이상 비싼 7000만원에 팔렸다. 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연구위원은 "비싼 땅값을 마련하려면 아파트와 상가 분양가 인상이 불가피한데, 지금 같은 경기 침체기에는 분양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했다.

부동산 경기가 절정에 달했던 2006~2007년에 사업이 집중적으로 추진됐던 것도 문제다. 27개 공모형 PF사업 중 2006~2007년에만 17건이 추진됐다. 지역적으로도 20건이 수도권에서 진행돼 사업 완공 후 공급 과잉 우려도 나온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종합적인 마스터플랜 없이 사업이 진행되다 보니 같은 수도권 안에서 주거시설과 업무·유통·상업시설로 채워진 사업들이 중첩돼 있다"고 지적했다

◇첨예한 이해대립…해법찾기 골머리

정부는 좌초 위기에 놓인 공모형 PF를 정상화하기 위해 지난달 13일 민관 합동 조정위원회를 구성하고 정상화 대상 사업을 선별하고 있다. 대상사업이 정해지면 구조조정에 돌입할 계획이다.

공모형 PF가 정상화되기에는 갈 길이 멀다. 대부분 사업은 분양가를 올리지 않으면 적자가 뻔한데,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로 '고분양가=분양 실패' 공식이 굳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투자 위축으로 상업·업무시설 매각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땅값 인하나 참여업체 간 리스크 분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민간 사업자들은 사업 정상화를 위해 땅값을 깎아주거나 주거비율 상향 등 사업계획 변경을 주장한다.

하지만 땅주인인 공공기관들은 특혜 시비가 우려된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대형건설사 PF담당 임원은 "정부가 구성한 조정위원회가 사업정상화를 위한 조정안을 확정해도 현재로선 법적 강제성이 없다"며 "참여업체 중 한 곳이라도 수용을 거부하면 소득 없이 끝날 수 있다"고 말했다.

☞공모형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공공·민간이 공동으로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를 만들어 사업을 추진하는 복합 개발 프로젝트.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이 소유한 토지를 대상으로 개발사업을 수행할 민간사업자를 공모·선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