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 성곽길 따라 걷는 운치 느껴보실래요?"

"30여년 전 시외버스를 타고 수원화성(華城) 근처를 지나다가 구릉을 따라 길게 이어진 성곽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말았어요."

경기도 문화관광해설사 1기로 2001년부터 12년째 수원화성 해설사로 일하고 있는 임순이(58)씨는 20대였던 1970년대 후반 처음 수원화성을 본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임씨는 "그때부터 수원화성은 내 삶의 전부가 됐다"고 했다. 작년 11월 경기도에서 문화관광해설사 창설 10주년을 기념해 선정한 '경기도 우수해설사' 20명 중 1명으로 뽑히기도 한 그는 지난 11년간 수원화성을 지키며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우리 문화재의 가치를 소개해 왔다.

그가 처음 수원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70년대 후반이다. 경북 영주 출신인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 양천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수원에는 언니가 살고 있었는데,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수원을 오가다 우연히 본 수원화성이 그를 매료시켰다. 문화재에 관심이 생긴 그는 1982년 아예 수원 매탄동으로 이사를 왔다. 수원에서 서울 직장까지 시외버스로 출·퇴근을 하면서도 그는 종로에 있는 한국관광공사나 경복궁 등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문화재 강좌를 2년 넘게 수강했다.

그는 "변변한 대중교통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퇴근후나 주말마다 종로에서 강의를 듣고 수원까지 오는데 피곤한 줄 몰랐다"며 "문화유산에 대한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살고 있는 수원의 역사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했다. 이런 지역 문화에 대한 관심은 수원문화원이나 지역여성회관, 시청 등에서 열리는 문화 강좌 수강으로 이어졌다. 결국 그는 본격적으로 문화관광 관련 일을 하기 위해 지난 1989년 직장을 그만두고 3년간 세계 여행길에 올랐다.

그는 "우리 문화를 공부했으니 이왕이면 남의 문화까지 알아두면 좋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떠난 여행이었다"고 했다. 미국 대륙을 돌고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을 지나 스페인까지 돌아본 뒤 내린 결론은 '내 것을 더 알아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물질적으로 풍요한 미국보다 경계 없이 손님을 맞이하는 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서 우리 전통의 삶을 보았다고 했다. 음식을 내놓으면 파리떼가 새까맣게 내려앉는 그곳이었지만 우리가 잃어버린 따뜻한 정이 그들에게 남아있었다. 그는 "한국과 비교도 안 되게 웅장하고 거대한 문화재를 가진 서양을 둘러보고는 오히려 풍부한 정신문화를 가진 우리의 뿌리와 근본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고 했다.

세계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다시 몇 년간 전국의 산과 계곡을 돌아다니며 우리 것을 보고 익혔다. 그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여자 혼자 여행을 다니니 마땅한 숙소를 찾기도 힘들었다"며 "각 지역을 돌며 민박을 자주 했는데 현지 주민들에게 '우리 것'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이렇게 세계와 전국을 돌며 문화유산을 혼자 공부해 온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지난 2000년 경기도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문화유산해설사'를 뽑는다는 공고를 냈고, 그는 필기시험과 해설 시연을 거쳐 4대 1의 경쟁을 뚫고 해설사가 됐다. 2001년 봄 해설사로 처음 관광객들 앞에 선 날을 그는 잊지 못한다.

그는 "1시간 정도의 해설을 하기 위해 수원화성을 20번 넘게 돌아보며 성곽 곳곳을 모두 눈과 머리에 담았다"며 "내가 실수하면 수원화성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관광객들이 기억하게 된다는 두려움에 한 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 10여년간 매주 2~3일씩 관광객들에게 수원화성을 소개해온 그가 해설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재미'다. 그는 "관광객들이 무엇을 물어보건 해설사는 제대로 알려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관광객들이 수원에서 유명한 음식을 추천해달라고 할 때 단순히 '갈비'라고 대답해선 안 된다"는 게 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깨달음이다. 정조대왕이 수원화성을 축성한 뒤 백성들을 살게 하기 위해 둔전(屯田)을 개발했고, 경작에 필요한 소를 공급하는 우시장이 함께 활성화되면서 갈비가 수원의 명물이 됐다는 설명까지 해야 관광객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설명과 함께 수원에 소가 많았다는 증거로 팔달구에 있는 우만동(牛滿洞)이란 지명까지 알려준다"며 "수원을 다시 찾게 하기 위해서 우리 지역의 이야기를 관광객들에게 들려주는 것은 해설사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했다. 오랜시간 수원화성을 지켜온 그가 화성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으로 꼽는 것은 '5월에 꽃이 핀 방화수류정'과 '여름에 비가 내리는 화홍문'이다.

그는 "가족·친구·연인과 함께 성곽을 따라 걸으며 뚜렷한 계절의 변화를 볼 수 있는 곳이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의 매력"이라며 "앞으로도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화성의 가치를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