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작가가 부러워… 영화계엔 스타 작가가 없다

김수현·임성한·인정옥·노희경·홍자매…. 마니아층을 거느린,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스타 드라마 작가'들이다. 그렇다면 영화계의 스타 시나리오 작가는 누구일까?

영화 제작자들과 시나리오 작가들은 "스타 시나리오 작가가 없고, 생겨날 수도 없는 현실이다"고 입을 모은다.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성공해도 드라마 작가나 영화감독으로 전업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도 했다. 드라마 작가로 활동 중인 박상연('공동경비구역 JSA'), 인정옥('여고괴담'), 고은님('번지점프를 하다') 등은 모두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인정받은 뒤 TV로 옮겨간 경우다. 왜 이렇게 됐을까.

가장 큰 원인은 역시 '돈'이다. 시나리오의 경우 갓 데뷔한 작가들은 한 편에 2000만~3000만원, 경력 작가들이 4000만~6000만원, 가장 좋은 대우를 받는 작가 너댓명은 1억여원을 받는다고 한다. 얼핏 보면 적지 않은 액수지만 "영화 시나리오 한 편 쓰는데 1~2년 걸리는 것을 생각하면 보수는 아주 적은 편"(한 영화 제작자)이라는 설명이다. 인기 드라마 작가들이 회당 5000만~1억원을 받아 20회 미니시리즈 한 편을 쓰면 수십억원까지 받는 것에도 크게 못 미친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진흥사업부 장광수 팀장은 "보수가 적으니까 인력 풀(pool) 자체가 작을 수밖에 없고 그중에서도 '투잡족(族)'들이 많다"고 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작가들이 받는 대우도 천지 차이다. 한 시나리오 작가는 "드라마에선 작가가, 영화에선 감독이 왕이다. 영화에서 작가가 갖는 권한은 거의 없다"고 했다. "시나리오는 여러 차례 각색을 거치기도 하고, 감독의 의도에 따라 바뀌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작가가 온전한 창작자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얘기다.

이러다 보니 시나리오 작가가 '약자'라는 점을 악용하는 일부 감독들까지 생겨났다.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다 지난해 '오싹한 연애'를 연출한 황인호 감독은 "감독이 시나리오도 쓸 줄 안다고 하면 대우가 달라지니까 남이 쓴 시나리오의 대사 몇 줄, 지문 몇 줄 고쳐서 작가 크레딧에 자기 이름을 딱 하니 올려놓는 감독도 있다"고 했다. 그는 "할리우드에서는 시나리오와 영화를 비교해 얼마나 고쳐졌는지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크레딧에 감독과 작가 이름을 어떻게 올릴지 결정한다. 한국에서도 이런 기준이 생겨야 시나리오 작가들의 판권·저작권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고 했다. 드라마 작가들은 1~2차 판권이나 저작권을 갖지만 시나리오 작가들은 이에 대한 권한이 거의 없다.

"원작을 각색해 만든 영화가 늘어나면서 작가의 입지가 더 줄어들었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차승재 회장은 "웹툰이나 소설 등을 각색해 만드는 영화가 인기를 끌게 되면서 작가들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더 적어졌다. 이들이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더 많이 내놔야 한다"고 했다.

스타 시나리오 작가의 빈곤이 가져오는 가장 큰 문제점은 "영화 콘텐츠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영화 제작자 A씨)는 점이다. 한 시나리오 작가는 "'스토리텔링'이 강조되는 시대에 시나리오 작가들이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는 건 부조리하다. 지난해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영화들이 빈약한 스토리 때문에 흥행에 참패한 데서 배워야 한다"고 했다.

영진위가 시나리오 작가 숫자를 100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을 뿐 시나리오 작가가 정확히 몇명이나 되는지 실태조차 파악돼 있지 않는 등 정책적·행정적 관리체계가 부실한 점도 문제다.

영화 종주국이랄 수 있는 미국 할리우드의 경우 시나리오 작가 단체인 '미국 작가 조합'(WGA)이 막강한 힘을 행사한다. 2007년 WGA가 파업했을 때 제작을 앞둔 영화의 75％ 정도가 중단됐고, 키이라 나이틀리 등 스타들이 WGA를 의식해 골든글로브 시상식 불참을 통보하기도 했다.

영진위 관계자는 "작가가 시나리오에 참여한 비중을 단계별로 나눠 보수의 일정 부분을 선지급하도록 하고, 영화가 수익을 남기면 인센티브를 주도록 하는 내용의 '표준계약서'를 제대로 이행하는 게 한 대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