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디지털 음악 판칠수록 LP 살아나리

"앞으로의 음악감상 수단은 디지털과 LP로 양분될 것이다."

스마트폰 이용자가 큰 폭으로 늘어나면서, 음악을 듣는 수단이 CD에서 디지털 파일로 완전히 넘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가장 아날로그적 음악 매체'인 LP 이용자도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디지털 음원을 저장해 놓기만 하면 '클라우드 컴퓨팅'을 이용해 어디서든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에, 가로세로 30㎝의 종이 재킷에서 LP를 꺼내 턴테이블에 놓고 바늘을 올려서 음악을 듣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대 음악시장인 미국의 음악 소비량을 측정하는 회사 닐슨사운드스캔이 최근 발표한 '2011년 미국 음악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미국 내 디지털 음악 소비량이 CD와 LP 등 실물 음악 소비량을 사상 처음 능가했다. 작년 미국에서 MP3 다운로드와 스트리밍 등 디지털 음악 소비량은 전체 시장의 50.3%를 차지해, 처음으로 실물 음악 소비량보다 많았다. 이와 함께 전체 음악 소비량도 2004년 이후 처음으로 증가세를 보여, 총 16억건의 음악 구매가 이뤄졌다. 이것은 전년도인 2010년에 비해 6.9% 늘어난 수치다.

한편 LP 판매량은 390만장으로, 전년(280만장)보다 36% 이상 급성장했다. CD 판매량이 전년 대비 5.7% 줄어든 것과는 대조적이다. 전체 LP 판매량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음악업계는 "앞으로 실물 형태의 음악 매체 중 LP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요즘 미국에서는 '베스트 바이'나 '타겟' 같은 대형 마트에도 턴테이블이나 LP 판매대를 새로 설치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최근 샌프란시스코 심포니가 말러 교향곡 세트를 LP 22장으로 이뤄진 포장으로 500세트를 찍어 750달러(약 84만원)에 내놨으나 모두 팔려나갔다. 이 LP 세트는 무게만 14㎏에 육박했으나 순식간에 동났다. 이 교향악단의 존 키저 단장은 "LP는 유일하게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실물 음악 매체"라며 "LP는 뭔가 묵직하고 중요한(substantial) 것을 가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디지털의 '어디에나 있고 또 아무 데도 없는' 특성의 안티테제로 LP가 CD를 제치고 살아남았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현상은 국내에서도 비슷하게 벌어지고 있다. SK마케팅앤컴퍼니가 최근 펴낸 트렌드 보고서 '뉴미디어 시대: 나, 그리고 우리'에 따르면 스마트폰의 기능 중 음악감상 비율이 점차 높아져, 서울에 사는 20~49세 남녀에게 물은 결과 '스마트폰으로 주로 음악을 듣는다'는 응답이 81%에 달했다. 이는 2010년의 64%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다.

반면 서울 회현동과 청계천, 용산 전자상가 등 LP 상가는 커다란 원형 플라스틱 음반을 구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국내 LP 판매량은 공식 집계가 없지만, 디제잉(LP를 손으로 돌려 음악을 만드는 것) 수요와 함께 CD 대신 LP를 찾는 음악 애호가가 늘고 있는 추세다.

작년 11월 19일 처음 열린 '서울 레코드 페어'에서는 하루 동안 총 1억원어치의 음반이 판매됐는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LP 매출이었다. 비트볼뮤직과 씨앤엘뮤직을 비롯해 꾸준히 LP를 발매하는 음반사들이 늘고, 최근에는 독일에서 LP 기계 4대를 수입해 온 LP 공장이 경기 김포에 들어섰다. '서울 레코드 페어'를 기획한 김영혁씨는 "40대 이상 중장년층이 주도해 온 국내 LP 시장에 20대 젊은 소비자가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